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이『천변풍경』은 박태원의 대표적인 장편으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경성 도심에 대한 기록이라면 『천변풍경』은 도시의 주변부에 대한 관찰이다. 청계천변은 분명히 도시에 속해 있으면서도 도심과는 다른 공간이다. 현란한 도시문화의 영향으로 천변에도 카페와 구락부 같은 유흥시설이 있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아직 동네아낙들이 모여드는 빨래터가 있고 이웃집 속사정을 제 속처럼 아는 전통적 공동체가 살아 있다. 천변은 생활의 무대이며 도시문명에 속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발소와 빨래터
그런데 『천변풍경』에 나타나 있는 이 다양한 인물들의 갖가지 행색은 두 가지 방향에서 동시적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나는 천변에 자리 잡고 있는 동네의 이발소이며, 다른 하나는 천변의 빨래터다. 남정네들이 모여드는 이발소에서 그들의 삶의 모습이 투영되고, 빨래터에서 나오는 아낙네들의 입을 통해 온 장안의 화제가 소설 속으로 끼어든다. 이 같은 소설적인 기법은 개별화된 인물들이 보여주는 특이한 행동과 태도를 하나의 공간 속에 배치하는 데 기능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영화기법의 활용
『천변풍경』은 그러한 천변 사람들의 생활을 노라마처럼 잡아낸다. 이 소설에 특별한 주인공은 없으며, 천변과 근처의 상점들 그리고 사람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보여주듯이, 이 소설은 한 장 면(그리고 특정한 인물)에서 다른 장면(다른 인물)으로 넘어간다. 이어지는 장면들 사이에는 주제나 사건의 영속성도 없다. 이 소설 이 발표된 1936년 당시, 이는 새로운 기법으로 받아들여져서 작가의 시각이 카메라의 눈처럼 드러난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부터『천변풍경』이 영화의 기법을 활용했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최재서의 평가를 빌면 박태원은 “자기 사상에 의하여 어떤 가상적 스토리를 따라가면서 인물을 조종하지 않고 그 대신 인물이 움직이는 대로 그의 카메라를 회전 내지 우회" 하였다는 것이다.
이 소설 전체가 그러한 특징을 유지하고 있는데, 특히 등장하는 인물 중 이 '카메라의 눈'을 체현하고 있는 인물은 재봉이발소 소년)이다. 그의 즐거움은 천변을 오고 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 관찰에는 어떠한 목적의식도 없다. 그저 그는 오가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그들이 어떤 태도로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관찰할 뿐이다. 이런 재봉의 시각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작가의 시각, '카메라의 눈'과 같다. 그러나 장면의 무조건 한 배열만으로는 소설의 완결성이 획득되기 어렵다. 작가는 여기서 시 · 공간적 폐쇄성이라는 장치를 마련한다. 곧 사건들의 무한한 나열을 막기 위해 시간과 무대를 제한시키고 등장인물의 운명도 이 무대에서 벗어나지 않게끔 조정하는 것이다.
시간적 폐쇄성
시간적 폐쇄성은 '1년의 순환'을 소설의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데서 생긴다. 이 소설은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이 부는 천변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만 하다"라는 말로 시작해, 이듬해 같은 시기를 알리는 “입춘이 내일모레라서 그렇게 생각하여 그런지는 몰라도, 대낮의 햇살이 바로 따뜻한 것 같기도 하다"라는 말로 끝난다. 그런가 하면 공간적 배경은 천변에 제한되어 있다.
공간적 폐쇄성
주요 등장인물 역시 천변으로 모아짐으로써 공간적 폐쇄성을 강화시킨다. 소설의 말미에서 이쁜이는 천변의 친정으로 돌아오고, 금순은 가족과 해후하여 천변에 자리 잡는다. 이들의 운명은 천변을 뛰어넘지 못한다. 그리고 또 하나 소설 내의 '카메라 눈'이라 할 수 있는 재봉이 소설의 첫 부분에서 기대했던 일(포목점 주인의 중절모가 벗겨져 개천에 떨어지는 일)이 소설이 끝날 때 일어남으로써, 중심적인 인물이나 사건이 없음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구성의 해이함은 견제되고 있다.
세태소설인 이 작품의 가치는 일찍이 최재서가 '리얼리즘의 확대와 심화'에서 피력한 바 있고, 임화에 의해 '세태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는 일제식민지 치하에서 사상이나 성격을 다루는 대신 외면풍경의 묘사에만 치달았음에 대한 비판이다. 외면묘사의 철저화는 내면의 심화와 평행선을 그으며 진행되는데, 이것이 변증법적 전개를 보이면서 새로운 단계를 이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한계를 가지며, 곧 이는 1930년대 소설의 한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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