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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② 고전 해제

제 2장 <동양문학> 정지용 전집(2)

by Be_ni 2024. 2. 7.

주요작품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얇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워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 성긴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이 시는 농경시대 한국인의 고향을 노래했다. 10개 연중 홀수 연은 고향의 잊을 수 없는 심상을 제시하고, 짝수 연은 잊을 수 없는 감정을 동어반복을 통해 강조하여, 홀수 연의 심상들을 연결하고 작품 전체에 통일성을 유지시켜 준다.

소년기를 시골에서 보냈던 작가는 17세에 서울로 유학 오면서, 고향과 가족을 떠나서 지내게 되고, 22세부터는 일본에 유학 가서 그곳에서 느꼈던 고립감은 조국과 고향에 대한 향수에 잠기게 했을 것이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이 시가 태어난다. 전통적이며 토속적인 시어를 써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시다. 날로 도시화, 비인간화가는 현대사회,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옛 고향의 정취에 젖어들도록 하고 있다.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꾹이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이 작품은 시인이 고향에 와서 읊은 것이다. 고향은 천진난만한 웃음이 있던 곳이며, 언제고 돌아가 안기면 어머니의 품 속과 같이 포근한 정을 느끼게 하는 안식처다. 그러기에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찌든 삶의 모습을 보게 되거나, 생활의 피곤함을 느끼게 될 때면 꿈의 안식처인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일제에게 짓밟히고 빼앗긴 고향은 옛 모습과 판이하게 달라져 있다. 고향은 실재하나 이미 자기의 고향이 아닌 것이다. 고향상실에 대한 이러한 자각은 비록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정지용의 역사의식의 반영된 것이다. 고향회복을 염원했던 식민지시대의 실향의식을 역설적 수법으로 노래한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