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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② 고전 해제

제 2장 <동양문학> 감자(3)

by Be_ni 2024. 2. 5.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문학은 추위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라 해도 좋을 만큼, 그의 문학사적 위치는 문단 선배인 이광수와 깊이 연계되어 규정된다. 이는 김동인이 춘원의 소설을 사회교화 도구라 비판하고 자신의 문학적 지향을 참인생 · 참예술의 완성에 두었던 데서 잘 드러난다.

1925년 <조선문단>에 이 소설이 발표되었을 때 몇몇 프로 비평 가들은 빈궁한 삶을 소재로 하여 그 비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다는 점에서 이를 신경향파적인 작품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감자」에서 작가의 관심은 사회적인 모순을 드러내고 분노를 터뜨리는 데 있지 않다. '정직한 농가에서 절도 있게 자란 처녀'인 복녀 가 빈민굴의 매음녀가 되고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 과정이 별다른 감정 없이 그저 제시되는 것이다. 환경의 변화(얌전한 농가에서 빈민굴로 전락)에 따라 복녀라는 인물은 변화한다. 입체적인 인물의 성격과 행동이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정론'의 영향을 여기서 볼 수 있는데, 이런 변화에 의해 감자」의 인물들은 어떤 자 의식도 갖지 못한다. 몸을 팔아 번 돈을 남편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복녀나, 아내의 죽음을 30원과 맞바꾸는 남편에게는 윤리 나 도덕에 대한 의식이 없다. 그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뿐이다.

이런 특징들, 특히 결정론의 영향을 지적하는 데서 「감자」를 자 연주의로 보려는 견해가 생겨난다. 김동인의 작품 중 자연주의라는 평을 듣고 있는 것에는 「배따라기」 「감자」 「김연실전」등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감자」는 자연주의의 정신이 잘 구현되어 있다 는 평을 받는다. 도덕이나 윤리 · 법이라는 치장을 걸치기 전 생물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잘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감자」는 김동인이 지향한 문학정신의 한 결정체라 할 작품이다. 한국의 근대단편이 시작된 이래 가장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인물로 창조된 복녀, 결정적 반전으로 경악을 안겨주는 극적인 구성, 이에 동원된 간결 명료한 문체, 특히 「감자」에서 처음 시도 된 것으로 평가되는 방언의 문체화, 이런 것들은 김동인이 한편으로 춘원을 시샘하며 한편으로 그를 극복하고자 하였기에 이룰 수 있었던 대표적 성과다. 그러나 이 작품도 김동인의 문학을 말할 때 흔히 지적되는 '역사의식의 부재'라는 한계 안에 갇혀 있다는 비판은 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