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 전집
어느덧 제2의 애국가처럼 되어버린 <향수>의 작가 정지용은 생 전에 3권의 시집을 간행한 바 있다. 제1시집 『정지용시집』 (1935), 제2시집 『백록담』(1941), 제3시집 『지용시선』(1946) 등이 다. 이중 『지용시선은 창작시집이 아닌 시선집으로 1집과 2집에 수 록된 시들 중에 25편을 뽑아 재수록한 것이다. 『정지용시집』에는 모더니즘 지향적인 시들과 민요 지향적인 시들이 혼합되어 있으나, 『백록담』에는 대체로 동양적 사유를 통해 자연을 탐구한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의 시는 언어의 세련미와 감정의 절제라는 측면에서 한국 현대시의 한 절정을 보여준다.
생애와 작품활동
북으로는 '소월'이 있고 남으로는 '목월'이 있으며, 중앙에는 ‘지용’이 있다고 한국현대시의 맥을 설명하면 어떨까. 지용은 충북 옥천출생으로 휘문고등보통학교와 1929년 일본 도지사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귀국하여 모교에서 교원으로 재직하였고, 1939년에는 〈문장〉의 시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박목월 · 조지훈 · 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등단시켰다. 광복 후에는 <경향신문> 편집국장과 이화여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으나, 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까이하는 등 좌경으로 기울었다가,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전향하여 보도 연맹에 가입하였다. 1948년부터는 직장을 그만두고 녹번동에 집을 마련, 서예를 하면서 소일하다, 한려수도를 여행하던 중 6·25 를 맞아 상경하였다. 1950년 자택에서 북한군에게 연행되어 서대 문 형무소에서 정인택 · 김기림 · 박영희 등과 같이 수감되었다. 이후 평양으로 이감되어 이광수 · 계광순 등 33인이 같이 수감되었다가 폭사당했다고 전해진다. 그에 관한 연구가 남한에서는 사실상 중단되어 오다, 1988년 해금으로 다소 활기를 찾고 있다.
작품으로는 『정지용시집』에 89편, 『백록담』에 33편으로, 총 122 편을 남겼다.
정지용의 문학세계
지용이 최초로 발표한 작품은 22세 때인 1925년 <학조> 창간 카페 프란스」등을 실은 것이나, 명성을 얻은 것은 24 세 때인 1927년 <조선지광>에 향수」가 발표된 이후다. 그러므로 「향수」는 그의 데뷔작이라 할 수 있다.
지용은 <시문학> <구인회>의 동인이었으며, 1935년에 시문학사에서 첫 시집 『정지용시집』이 나왔다. 지용의 제2시집인『백록담』은 1941년 〈문장〉사에서 발행되었고, 그 이후에는 사실상 작품활 동을 중단했다. 백록담을 내놓은 시절이 가장 정신이나 육체가 피폐한 때"라고 회고했던 것처럼, 일제말기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이때는 <문장> <인문평론>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폐간된 것을 보면, 당시의 그의 심정이 이해된다.
지용은 1930년 박용철 · 김영랑 등이 창간한 <시문학> 동인지 창간호에 이른 봄아침」등을 실었다. <시문학> 창간을 계기로 순 수문학운동이 일어났으니, 우리 문학사에서는 소위 ‘시문학파’ 라 하여 1920년 중반 이후 문단을 주도한 카프파의 계급주의 문학을 비판하고, 문학의 예술성을 주장했다. 시문학파의 대표적인 사람 은 박용철 · 김영랑 · 이하윤 · 정지용·신석정 등이다.
다음으로 1930년대 모더니즘은 김기림에서 출발되는 것처럼 흔히 이야기되나, 시단에서는 이미 정지용 · 신석정 등과 함께 김영랑 · 김형구 등 모더니스트로서의 경향을 지닌 시인들이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감정의 무절제한 유로를 배격하고 ② 이미지를 중시하며 ③언어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그것의 조탁에 치중하는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의 근거지는 <구인회〉라 할 수 있는데, 9인 중 일부는 교체되기도 하여 김기림 · 정지용 · 이상 · 김 광균· 신석정 · 장만영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지용은 시문학파의 중심인물인 동시에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으로 볼 수 있다.
지용 시의 특징
시를 자세히 보면 바다의 시, 산의 시, 도회의 시, 항로의 시, 신앙의 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다양한 특징을 지닌 시인이어서, 어느 일정한 틀로 그의 전 작 품을 분류할 수는 없으나, 몇 갈래의 특징적 경향은 나타난다.
먼저「고향」「해바라기씨」「지는 해」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민요적' 경향이 강하다. 그의 민요시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로 시작되는 「고향」은 소월의 「산유화」「진달래꽃」, 「목월의 나그네」와 마찬가지로 애송되는 작품이며, 따라서 지용은 전통적인 면에 서는 소월과 목월 사이에 위치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다음으로 들 수 있는 것이 '순수시적' 경향인데, 이는 30년대 시문학파의 활동과 무관하지 않다. 시문학파 중에서도 시가 언어 예술임을 자각하고 특히 언어의 조탁에 몰두한 시인이 김영랑과 정지용이다. 그는 언어의 조탁을 위해 고어와 방언도 사용하고, 때로는 말을 만들어 쓰기도 한다. 순수시의 지향이라는 점에서는 영랑과 궤를 같이하나, 영랑이 음악성을 중시한 데 비해, 지용은 회화성에 더 치중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19세기 자연과학적 유물론에 반대하고, 현대의 기계문명을 비판하며 20세기 전반기에 일어난 모더니즘 기법을 수용한 한국 모더니즘의 선구라 할 수 있고, 「불사조」 「나무」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한국최초의 기독교 시인이 아닌가 보여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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