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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② 고전 해제

제 1장 <서양문학>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by Be_ni 2024. 1. 20.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신적 탐구과정의 집대성으로 육욕적인 아버지 표도르와 그의 세 아들인 드미트리, 이반, 알료사 그리고 사생아 스메르자코프를 중심으로 ‘부친살해'라는 사건을 두고 벌이는 심리적 갈등과, 고난을 통한 인간영혼의 구원문제가 심도 있게 그려지고 있다. 인간의 본질과 종교적 문제에 관한 사색을 담은 이 작품에서, 특히 이반과 알료샤 사이에 벌어지는 ‘대심문관’ 논쟁은 백미를 장식한다. 이 작품은 복잡다단했던 그의 일생에 모처럼 찾아온 평온한 노년에, 일생의 문학적 탐구를 차분히 정리하면서 쓴 것이어서 문학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생애와 작품활동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모스크바의 빈민구제 병원 의사의 차남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도시적인 환경 속에서 자랐다.

부친은 엄격한 사람으로 몹시 신경질적인데다가, 만성 알코올 중독자였다. 반면 어머니는 남편의 정신적인 학대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고 명랑한 성품을 잃지 않는 여성으로 음악과 시에도 조예가 깊었다. 냉엄한 아버지가 군림하는 분위기 속에서, 『신 · 구 약성서에서 발췌한 104가지 이야기』를 교재로 하여, 러시아어의 읽고 쓰기를 가르친 어머니의 자애스러운 모습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년시절에 마음 깊이 새겨져 있었다. 부친이 귀족이긴 했으나, 대지주나 귀족 출신인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와는 달리 집안의 생계는 어려운 형편이었다.

16세 때에는 그의 정신적 안식처였던 모친의 죽음을 당하고, 17세에 육군 중앙공병학교에 입학하여, 재학 중 발자크, 위고, 괴테, 호프만 등의 작품을 탐독하였다.

19세에는 부인 사별 후 은둔생활을 하고 있던 부친이 숲 근처의 노상에서 농민들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양친의 죽음으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심신상실을 수반한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프로이트는 이 사건을 취급하여 『도스토예프스키와 부친살해』 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논지는 도스토예프스키는 강렬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경향을 가지고 있어서 내심 은근히 부친의 사망을 바라고 있었는데, 그것이 현실화됐기 때문에 자기가 실제의 범인인 양 착각하게 되어, 훗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나타난 낭비벽과 도박병 등의 이상한 행동양식으로 표출되었으리라는 것이다.

오늘날은 당시의 그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만, 도스토 예프스키의 죄의 관념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암시를 해준 것만은 사실이다. 부친의 죽음에 대해 평생 입을 열지 않았던 도스토 예프스키가 가장 만년의 걸작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부친 살해에 대한 테마를 취급한 것은, 그의 가슴에 새겨진 손톱자국의 깊이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특히 이반과 스메르자코프(농노의 뜻)의 관계, 즉 이반의 사주에 의해 스메르자코프가 부친살해의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는 이야기의 설정은, 도스토예프스키와 부친을 살해한 농부와의 공범관계를 시사하여, 그가 의식의 심층에서 부친살해에 가담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24세 때 그는 '네베 강의 환영'이라는 기이한 체험을 한다. 그것은 창조적 계시의 순간으로, 자신의 내부에서 새로이 탄생하 려는 소설의 전모를 일순간에 엿보았던 것인데, 그는 이 계시에 따라 실패한다면 '목을 매든가, 네베 강에 몸을 던진다'는 각오로 창작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가난한 늙은 관리와 의지할 곳 없는 불행한 아가씨의 깨끗한 사랑의 이야기인 그의 처녀작『가난한 사람들이 완성되었다. 이 작품을 읽은 그리고로비치, 네크라소프 등이 감동한 나머지 '새로운 고골리의 출현'을 외치며 성공적인 문단 데뷔를 축하했다. 당대의 평론가인 벨린스키의 격찬이 뒤따라 그의 문단데 뷔는 화려한 것이었다. 훗날,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것은 내 생애 최고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유배지에서도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 힘이 솟았다"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처녀작의 성공과는 반대로, 이후 발표한 10여 편은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다. 그 후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집단인 어느 서클에 참가하였는데, 동료 30명과 함께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사형직전에 황제의 특사를 받아 4년간 시베리아 유형을 떠난 다. 이때의 죽음에 대한 공포의 체험은 그 뒤의 『백치』에서 미슈킨 공작의 입을 통하여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유배 중 러시아 민중들의 정서를 체험하기도 하고 그곳에서 허용된 책은 『신약성서』뿐이었는데, 그는 이 책을 거듭 읽었다. 이로 인해 젊은 시절의 급진주의 사상은 기존질서에 대한 존중과 민중의 메시아적 사명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었다. 고통을 통해 세상을 구원한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러시아 영성주의가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돼었다. 그리고 감옥은 굴욕 당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더 깊이 연구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1857년 폐병환자인 미망인 마리아와 비참한 결혼, 그 후 20세 연하인 아폴리나랴와의 사랑, 잡지사 경영의 실패 등으로, 그는 도피생활을 계속하는 기구한 일생을 보내게 된다. 1871년 유럽여 행에서 돌아온 후 10년간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다. 그의 생애를 통한 사색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카라마조프의 형 제들』을 썼다. 이어서 바로 알료샤가 주인공이 되어 활약하는 속편을 써서 『전쟁과 평화』와 같은 대장편을 구상했으나, 그의 죽음으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예술적 가치와 심오한 사상을 지닌 세계 최대의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죽기 직전에 푸슈킨 동상제막식에서 행한 기념연설은 러시아의 세계적 소명을 힘차고 분명하게 예언함으로써 청중들을 감동시켰다. 이것은 불우했던 그의 만년을 보상해준 사건이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과 도스토예프스키

19세기 러시아 문학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가 누군가 하는 문제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 사이에서 판가름날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초 러시아의 바이런이라고 일컬어지는, 로망주의 시인인 푸슈킨도 있었다. 그는 러시아 풍경미를 서정시로 묘사하고, 민속담에서 시의 원천을 발견하였다. 일상생활을 주제로 하여 대중의 사랑을 받은 푸슈킨은 소설을 쓰기도 하고 희극을 남기기도 했다. 푸슈킨보다 더 젊은 고골리는 사신이란 소설에서 러시아의 전원생활을 풍자하였다. 그의 걸작 희곡은『검찰관』이며, 그는 여기서 러시아의 정부와 부패관리를 풍자 · 비판하였다.

위대한 러시아의 문학은 19세기 중기 이후 투르케네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이들의 작품 경향은 로망주의 · 리얼리즘 · 이상주의가 융합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옳다. 투르게네프는 파리에서 대부분의 생애를 보냈으며, 서양사회에 처음으로 알려진 러시아 소설가였다. 그의 대표작『아버지와 아들』 은 과학적 사회이념을 가진 젊은 세대와, 현상유지를 원하는 낡은 세대와의 갈등을 묘사한 것이다.

『전쟁과 평화』(1862~1869)라는 장편소설에서, 1812년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을 다루면서 러시아 사회를 묘사한 톨스토이 (1829∼1910)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비해 덜 운명론적이긴 하지만, 역시 강력한 운명 앞의 나약한 인간을 묘사하고자 하였다.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두 연인이 공공연한 관습에 도전하는 비극을 그리고, 결국 세속생활의 허영에서 신비적인 인간애로 위안을 찾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공산적 무정부주의자이며 소박한 생활을 예찬한 톨스토이는『부활』에서는 더욱더 사회복음적 설교를 통하여, 문명을 비판하고 단순 소박한 육체노동 생활을 권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세계

그는 심리소설의 대가로 비참한 러시아 민중들의 생활을 리얼리즘 수법으로 묘사하였다. 동시에 그는 인간의 영혼이 고통으로 정화된다는 깊은 신비주의적 신념을 표현하였다.

『죄와 벌』로 시작되는 그의 후기의 대작은 당시의 정치적 · 사상적 문제를 예민하게 반응시키면서, 동시에 인간존재의 근본문제를 제기한 점에 그 특색이 있다. 이론적 살인자 라스콜리니코프적인 인간을 그린『죄와 벌』, 조화와 화해를 추구한 아름다운 인간 미슈 킨 공작의 패배를 묘사한 『백치』, 네차예프 사건에서 소재를 얻어 혁명의 조직과 사상의 병리를 지적한『악령』, 청년의 야심적 행태를 다룬 『미성년』, 친부 살해범을 주제로 신과 인간의 문제를 정면으로 대결시킨『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 각 작품에서 다룬 소재는 각기 다르지만, 내면적인 통일성으로 굳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세계' 라고 일컬을 수 있다.

기구한 운명, 즉 일생 동안 괴롭힌 불치의 간질병, 사형집행 직전의 특사, 시베리아 유배생활, 광적인 도박병, 빈곤 및 가정불화 등에서도 불굴의 창작력을 발휘하였다. 그의 창작과정은 크게 두 계열로 나눌 수 있는데 처녀작『가난한 사람들』로부터『죽음의 집의 기록』까지가 전반기의 계열에 속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전반기의 창작을 통해 주로 학대받는 민중들의 숨은 고뇌와 한숨을 대변하는 인도주의적인 리얼리스트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시베리아 유배에서 돌아온 후『지하생활자의 수기』를 기점으로, 그의 문학은 철학과 사회문제를 다룬 사상소설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의『죄와 벌』은 이러한 창작경향을 완전히 구상화한 장편소설이었다.

그 후 『백치』 『악령』 『미성년』 등을 거치는 동안 도스토예프스키의 철학적인 사색 · 인간관 · 세계관은 더욱 원숙미를 더해갔고, 마침내 그의 최후의 대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완성의 극치에 달했다.

 

주요 등장인물

이 작품을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하고 있는 선과 악의 투쟁을 주제로 펼쳐지고 있는데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표도르 카라마조프: 음탕하고 물욕이 강한 지주로, 한 여인을 두고 아들과 경쟁하다가 그가 낳은 사생아 스메르자코프에게 살해당하는 인물.

드미트리: 장남으로 거칠고 난폭한 반면, 정열적이고 순진한 면과 직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인물.

이반: 2남. 허무적이고 철저한 무신론자. 이지적 인물.

알료샤: 3남. 순진무구하며 신앙적인 인물, 행동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미래의 새로운 세대로 상징되는 인물.

그루센카: 드미트리가 모스크바에서 데려온 여인으로 드미트리의 마음에 감화되어 그와 결혼하여 살게 되지만 배신당하는 여인.

스메르자코프: 파블로비치 집안에서 하인으로 생활하다가 자신의 출신에 대해 불만을 품고, 아버지를 살해한 뒤 자신의 뜻과 연결되지 않자 자살하는 표도르의 사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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