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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② 고전 해제

제 1장 <서양문학> 카라마조프의 형제들(2)

by Be_ni 2024. 1. 21.

작품의 주요내용

세계 최대의 고전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작품은 『죄와 벌』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소설이기는 하나, 그것을 끝까지 다 읽은 우리나라의 독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도스토예프스키 특유의 심오한 사상성, 내면세계의 다양성, 인간심 리의 부조리적인 갈등 등 그의 문학세계의 난해성이 그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독자는 우선 그 소설의 방대한 규모와 양에 위압당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일단 잡으면,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놓을 수 없는 것이 또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줄거리

이 소설의 무대는 러시아의 어느 시골 도시이다. 카라마조프의 집안은 늙은 홀아비 표도르 카라마조프와 그 의 자식들, 즉 장남 드미트리, 둘째 이반, 셋째 알료샤, 그리고 사생아 스메르자코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는 그 이전의 어 느 작품에서 보다 많은 유형의 상이한 성격소유자들이 등장하지 만, 그들은 다 같이 각양각색의 인간적인 특질과 본성을 인격화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몰락한 시골귀족의 후예인 아버지 표도르는 방탕한 호색한이다. 독설가로도 유명하고, 선악의 경계를 완전히 초월한 리비도(성애)의 소유자이며 육욕과 물욕의 화신이라 할 수 있다. 장남인 드미 트리는 카라마조프가의 ‘정열’의 세계를 대표한다. 그는 아버지와 비슷한 정열적인 감정과 야성적인 생명력을 물려받고 있지만, 명예와 진리를 존중하는 고상한 일면도 지니고 있다.

둘째 아들인 이반은 카라마조프가의 탐욕스런 생명력을 '지성'의 영역으로 바꾸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모스크바의 최고의 학 부에서 교육을 받고 재기발랄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그는 허무주의적 견지에서 신과 종교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다. 드미트리가 육체적으로 부친을 증오한다면 이반은 이론적으로 증오한다.

셋째 아들 알료샤는 신앙심이 강하고 누구에게나 사랑과 동정을 베푸는 착하고 어진 청년이다. 그러나 그의 내부에도 카라마조프 적인 피가 흐르고 있음은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잘 알고 있다.

아버지와 세 아들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지만, 그들은 육친에 대한 애정에서 모인 것이 아니라, 유산상속을 둘러싼 분쟁 때 문에 찾아든 것이다. 그러나 이 세 아들 중 모스크바에서 찾아온 이반만 아버지의 집에 머물고, 퇴역장교인 드미트리는 밖에 숙소를 정한다. 한편 견습 수도생으로 수도원에 들어가 기거하고 있는 알료샤는 조시마 장로 밑에서 참된 신앙의 길을 배우고 있다. 이 집안의 사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부친 카라마조프와 백 치나 다름없는 여인과 사이의 사생아인 간질병 환자 스메르자코프가 하인으로 이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메르자코프는 자 기자신의 저주스러운 출생을 원망하면서 세상을 분노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이 가족의 운명은 단지 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고 있을 뿐, 이 광대하고 감동적인 작품 속에는 그 밖에도 수많은 모티브와 테마가 교향악처럼 조화되어 부수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드미트리와 이반은 자기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증오라는 공통의 본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루센카라는 여자 때문에 질투에 불타는 드미트리는 공공연히 아버지를 죽인다고 협박한다. 한편 보다 교묘한 수단을 취하는 이반은 스메르자코프에게 '모든 것은 허용된다'는 사상을 불어넣고 반쯤 의식적으로 이 탐욕스런 노인을 죽이도록 교사한다. 드미트리가 그루센카를 찾아 헤매던 어느 날 밤, 스메르자코프는 정말로 카라마조프 노인을 살해한다. 드미트리는 마을의 술집에서 그루센카와 함께 한창 흥겹게 소동을 벌이고 있던 한밤중에 체포된다.

그러나 이반은 아버지를 죽인 진범이 드미트리가 아니라 자기가 교사한 스메르자코프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편 스메르자코프는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이반에게 고백하고, 목을 매 자살한다. 이반은 법정에서 드미트리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드미트리는 오판에 의해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는다. 드미트리는 자신이 실제 살인자는 아니지만 마음속으로 언제나 살해하리라는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므로 자기의 죄를 인정하였다.

 

대심문관 논쟁

이상이 외면적인 줄거리이나, 작품의 내면적인 줄거리는 알료샤를 둘러싸고 조시마 장로와 이반 사이에 전개되는 크리스트교와 무신론의 사상적 대결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논리와 이성으로 신을 거부하는 이반에게 조시마 장로는,

"우주의 비밀은 머리가 아닌 가슴과 감정, 그리고 믿음으로 이 해할 수 있다.” 고 설득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의 핵심은 이반의 극시대심 문관에 있다. 목로주점에서 알료샤와 자리를 함께한 이반이 이 극시를 읽는 것으로 되어 있다.

카톨릭의 이단심문이 가장 전성기를 이루던 15세기, 스페인의 세빌랴 마을이 그 무대다. 이단자들을 화형에 처하는 광장에 홀연 히 그리스도가 강림한다. 대심문관의 명령으로 그리스도는 체포되어 투옥된다. 그날 밤 대심문관은 "왜 우리를 방해하러 왔는가?" 하고 힐난한 뒤 그리스도가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물리쳤다'고 비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주제는 마 태와 누가복음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가 악마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는 문제이다.

“당신은 양심의 자유를 위해 '빵'을 거절했기 때문에, 인간은 빵을 곁눈질하며 시비와 선악의 판단에 괴로워해야만 하게 되었다. 또한 당신은 자유로운 신앙 때문에 '기적'을 거부했는데, 그것 때문에 인간은 기적과 더불어 신도 거부하고 말았다. 그리고 당신은 지상의 '권력'을 거절했는데, 지상의 인류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의 권력 아래 전 세계적으로 결합하여 평화와 행복의 왕 국을 지상에 건설하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가 인간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인간에게서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 즉 선악 선택의 자유는 인간의 의식으로는 무거운 부담이어서,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크나큰 재앙이라고 본다. 그래서 화형에 처하겠다고 규탄한다. 이 대심문관의 규탄에 대해 그리스 도는 한마디 말도 없이 시종 침묵을 지킨다. 그리고 마지막에 말없이 대심문관에게 입 맞춘다. 이러한 이반이라는 인간의 이름에 의한 그리스도의 고발에 대해서 알료샤는 "당신의 극시는 그리스도의 찬미이지 결코 비방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대심문관'은 빵과 자유의 문제, 신앙과 이성의 문제, 정치권력의 문제 등 “지상에서의 인간성의 역사적 모순 전체를 포함시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신에 대한 반역의 근거가 있다. 그러나 알료샤의 말처럼 작가는 자유스러운 양심의 선택과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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