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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② 고전 해제

제 1장 <서양문학> 적과 흑

by Be_ni 2024. 1. 13.

적과 흑

1830년의 연대기'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프랑스의 1830년 7월 대혁명 직전의 지배자 교체에 따른 격동의 시대에, 한 평민 청년의 야심을 통하여 귀족 · 승려 · 대부르주아의 3자가 서로 세력 다툼을 벌이는 사회의 반동성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심리학과 역사 철학의 연구서다. 주인공 쥘리앙 소렐이 가진 야심의 좌절과 옥중에서 성취되는 그의 내면적 구제를 통하여 역사를 통찰하는 작가의 리얼리즘과 그 역사를 넘어서는 낭만주의가 명확하게 표현되고 있다.

 

생애와 작품활동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살았노라, 썼노라, 사랑했노라". 전자는 로마의 영웅인 시저가 소아시아를 점령하고 로마에 보낸 전보의 내용이고, 후자는 스탕달의 유언에 따라 몽마르트 언덕의 묘비에 새겨져 있는 그의 묘비명이다.

스탕달은 19세기 전반기 프랑스 소설가로서, 발자크와 함께 근 대소설의 개조로 불리며, 문필활동 외에도 나폴레옹 시대에 군 인 · 외교관을 지내고 수많은 연애편력으로 점철된 그의 생애는 파란이 많았다.

본명은 마리 앙리 베일레. 그는 부유한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소년 베일레의 정신생활은 매우 특이해서, 어머니를 열애했고 아버지를 증오했다. “어머니는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나는 그 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우리의 키스를 방해하러 올 때는 몹시 얄미웠다”는 자서전의 한 구절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어머니를 7세 때 잃었다. 아버지와 그 친척인 셰라피 아주 머니, 가정교사였던 랠란 신부 등 세 폭군을 평생 동안 싫어한 반 면, 외가 쪽 사람들은 좋아했다. 특히 그가 '진정한 아버지'로 생각했던 외조부는 그에게 18세기의 합리주의적 사상을, 외숙부는 돈 주앙적(쾌락주의적) 인생관을, 외종 조모는 고매한 영웅주의를 심어주었다. 

그는 17세에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원정군에 참가하여, 그곳에서 자유와 사랑 · 쾌락 · 미와 음악을 알았다. 이때부터 이탈리아는 그의 정신적 고향이 되었다. 그는 19세부터 문학수업에 정진, 22 세부터는 여배우 멜라니와 동거하면서 수입 식료품상의 점원, 27 세에는 나폴레옹 제정에 참가, 29세에는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 정에 종군, 나폴레옹이 몰락한 31세부터는 문필생활로 생계를 유 지하는 휴직 군인, 38세에는 사랑에 빠지나 계속적인 실연, 43세에 작가생활, 48세에 다시 관직으로 들어가 이탈리아 주재 프랑스 영사를 지내는 등 다채로운 경력을 소유했다.

35세에 알게 된 메틸드 덴보스키는 생애 최고의 애인이었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경험으로 『연애론』을 탄생시킨 다. 1814년(31세),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실직한 그는 이탈리아로 이주하여 문필활동을 계속하다, 1821년 이탈리아로부터 추방 당하여 영국을 여행하고 파리로 돌아온다. 영국여행에서 셰익스피 어의 문학을 발견한 것은 큰 소득이었고, 파리에서는 사교계에 출 입하여 르라크루아, 메리메 등과 사귀었다.

왕정복고하의 파리에서 그는 실의에 빠진 문단의 방랑자에 지 나지 않았다. 그동안 몇몇 작품을 쓰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적과 흑』(1830)은 그의 대표작이었지만, 발자크와 소수의 독자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냉담한 반응이었다. 기나긴 불우한 생활이 끝나고, 1830년 7월 혁명과 더불어 반동정치가 붕괴됨에 따라 그는 오랫동안 숙원이던 외교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진보사상과 자 유주의는 곧 오스트리아 당국의 경계를 받게 되어 이탈리아 통일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혐의로 축출되었다.

그 후 10년 동안을 교황령의 소항구인 치비타베키아 영사로 주 재하면서 권태롭기 이를 데 없는 세월을 보냈다. 차츰 노쇠를 자각하고 고독을 느끼기 시작하여 몇 차례에 걸쳐 결혼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한 권태기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가끔 파리로 돌아오거나, 영국여행을 하며 에세이류를 집필했다.

1839년 단시일에 명작 『파름의 수도원』을 탈고했는데, 그는 생전에 문명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단 두 편의 소설로써 백 편이 상을 쓴 발자크와 비견할 만한 자리를 문학사에서 차지하게 되었다. 오히려 20세기에 들어오면서는 위고, 발자크보다 더 많은 애 독자를 가졌고, 보다 더 현대인에 가까운 선구적인 천재로서 각별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는 동시대의 냉담과 몰이해에 대해서 끝까지 경멸했으며, 자신의 굳은 신념을 잃지 않았다. 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메리메는 시종일관하여 그를 높이 평가하였고, 특히 1840년에 발자크는 스탕달을 찬양하는 기사를 발표하여 문인으로서 불우했던 그에게는 더없는 위안과 기쁨을 주었다. 그러나 괴팍하고 자존심이 강한 그 도 만년에 이르러서는 연애와 방랑 속에서 추구하던 '행복의 획 득'에도 지치고, 고독의 무게를 덜 길이 없어, 자기가 기르던 두 마리 개에게 애정을 쏟으며 삭막한 만년을 담담하게 살아갔다.

1841 년 요양차 파리에 머물다 이듬해 거리에 쓰러진 채 사망, 몽마르트르 언덕에 안장되었다. 사망 당시 주머니 속에는 “나는 백 년 후에나 유명해질 것이다”라는 유서가 들어 있었다. 그의 예언대로 당시 언론은 그의 죽음을 철저하게 외면했으나, 19세기말에 와서 '어느 날 갑자기' 세인들은 그의 작품을 주목하게 되었다.

 

시대적 배경과 문학세계

시대적 배경

이 작품은 프랑스 역사상 1814~30년 사이의 루이 18세와 샤를 10세에 의한 '왕정복고기'라는 시대적 배경하에 씌어진 작품이다. 1799년부터 1814년까지의 유럽사는 프랑스 역사, 특히 나폴레옹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나폴레옹 시대는 둘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곧 1799~1804 년의 공화정시대와 1804~1814년의 제정시대다. 전자는 나폴레옹이 제1집 정관으로 프랑스 혁명의 성과를 보존하면서 프랑스를 군사적 · 정치적 측면에서 강화한 시대이며, 후자는 나폴레옹이 정치체제를 주로 군사력으로 유지하며 전쟁 · 정복 · 동맹이란 수단에 의해 프랑스 혁명 정신을 유럽 전역으로 전파한 시기였다.

프랑스 혁명은 주권재민 · 국민개병 · 국민교육제도 · 애국심 · 대의제, 특히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나폴레옹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자의로, 혹은 타의로 유럽 각지에 전달하였 고, 그 반응은 심대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폴레옹은 자기가 정복한 국가 안에 자유주의와 내셔널리즘의 씨를 뿌림으로써 마침내는 자기 자신의 운명을 재촉하는 결과를 낳았다.

영국에 대한 대륙봉쇄령, 각국의 저항운동, 러시아 전쟁의 실패, 유럽 각국의 해방전쟁으로 1814년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유배되고 프랑스 혁명 중 처형된 루이 16세의 동생 루이 18세가 즉위하여 '왕정'이 부활되었다. 망명귀족들이 속속 귀국하여 혁명 이전의 특권적 지위를 향유하였고, 왕은 무능하여, 많은 사람들은 물러난 지 9개월도 안된 나폴레옹을 동정하게 되고, 이러한 분위기에 자극받은 나폴레옹은 재집권의 뜻을 불태워 에바 섬을 탈출, 군중들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파리에 입성했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은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하여 나폴레옹의 '백일천하'는 막을 내린다. 이후에도 부르봉 왕가의 왕정은 1830년 7월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된다. 『적과 흑』은 이러한 왕정복고의 후반기, 샤를 10세 시대를 그 배경으로 삼고 있다.

 

문학세계

소설가 스탕달의 공적은 근대소설에서 사실주의의한 형태를 수립했다는 점에 있다. 『적과 흑』의 부제 인 1830년 연대사'가 암시하는대로 작가는 프랑스의 현실묘사를 과제로 했다. 이것은 “인간은 이제 소설을 통해서만 진실에 도 달할 수 있다”는 성찰과 “소설, 그것은 거리에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거울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경구에서 확인된다. 확실히 그의 소설은 발자크의 소설처럼 사회 전체의 파노라마를 묘사하려는 것은 아니고, 단 한 사람의 주인공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많다.

스탕달의 거울은 시대와 사회를 비추기는 했지만, 그것은 대부분 주인공이라는 렌즈를 통해서였다. 작품 중에서 내적 독백을 많이 사용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또 창작 노트에서 “풍속의 묘 사는 소설 중에서 재미없는 것이다. 묘사를 놀랍게 바꾸는 것이 좋다. 묘사는 하나의 감정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현실에 직면해서 흔들리는 주인공의 내면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신속하게 글로 옮긴다는 것이 스탕달 창작의 최대 비밀, 즉 심리적 사실주의의 뼈대였던 것이다.

그런데 소설 안에서 특권적인 렌즈에 지나지 않는 스탕달의 주인공은 작가의 이상화된 모습이라고 흔히 말하는데, 작가 자신의 내면의 모순과 명민을 지향하면서도 감성의 발작에 발이 걸려 넘어진 실패의 패턴은, 작중인물에서 조금도 완화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소설의 줄거리는 대부분 주인공의 실패에서 그 원동력을 얻는다. 주인공에 대한 야유 또는 주석이라는 형태로 가끔 나오는 작가 개입의 기법, 내적 독백의 다양함, 인물의 놀람을 표현하기 위해 원인을 빼고 결과만을 서술하거나, 반대로 결과를 생략하는 도약적 문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는 심리적으로는 매우 사실적인 서술법과 여러 비연속적 수법으로 자신의 소설을 구축해갔다. 발상과 수법의 참신함 때문에 생전에 많은 이해는 얻지 못했지만 죽은 뒤 그의 작품은 점차 폭넓은 독자를 획득하였다.

 

주요 등장인물

이 작품은 인간의 행복은 외적인 사랑보다, 내적인 자아로부터 얻을 수 있음을 말하고, 아울러 위계화된 사회의 모순과 부당성을 폭로하고 좀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질서에 대한 염원을 불러일으킨다.

 

쥘리앵: 지적인 성품의 소유자로, 귀족에 대한 불만과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애를 쓰다 실패하는 비련의 인물.

레날 부인: 읍장의 부인으로 귀족적인 삶에 예속된 남편을 버리고 쥘리앵을 사랑하다, 오해로 그의 총에 맞아 죽게 되는 여인.

마틸드: 라몰 후작의 딸로 창백한 귀족을 싫어하고 쥘리앱을 사랑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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