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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해하기

문화와 철학(6)

by Be_ni 2023. 9. 18.

1장 문화 산업과 영화

03. 영화를 이해하는 두 가지 시선(3-2. 벤야민의 영화 이해)

독일 철학자 벤야민(W. Benjamin)은 영화가 지각을 확장한다고 높이 평가한다. 영화의 카메라는 배우의 얼굴을 가까이 포착하는 클로즈업을 통해 피부의 땀구멍까지 보여 줄 수 있고 사람이 걷는 모습을 느리게 포착하는 고속 촬영을 통해 한순간의 걷는 자세도 보여 줄 수 있다. 피부의 땀구멍이나 한순간의 걷는 자세는 맨눈으로 보기 힘들다.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맨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게 한다는 뜻에서 우리의 시각을 비롯한 지각을 확장한다.

영화, 문화 산업

벤야민에 따르면 영화는 예술과 과학의 결합이기도 하다. 영화가 보여 주는 한순간의 걷는 자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에 속한다. 무의식은 좁은 뜻에서는 성 충동이나 폭력 충동처럼 사회가 억압하는 충동을 의미하지만 넓은 뜻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의식은 앎이고 무의식은 모름이다. 무의식은 오스트리아 과학자 프로이트(S. Freud)가 정신분석학을 통해 밝힌 마음의 영역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우리에게 무의식의 충동을 소개하듯이 영화의 카메라는 우리에게 무의식의 시각을 소개한다. 영화가 우리에게 무의식의 시각을 소개하는 기법은 1초에 24장의 사진 필름을 연속으로 스크린에 영사해 움직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영화는 카레라를 통해 사진 예술을 정신분석학이라는 과학과 결합시킨다.

 

벤야민은 영화가 관객이 예술 작품에서 수용하는 가치에 변화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관객이 화가 피카소(P. Picasso)의 그림과 같은 예술 작품에서 수용하는 가치는 '제의 가치(cult value)' 이고 영화 배우이자 감독인 채플린(C. Chaplin)의 영화와 같은 예술 작품에서 수용하는 가치는 '전시 가치(exhibition value)'다. 제ㅐ의 가치는 보인다는 사실보다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고, 전시 가치는 보인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석기시대의 동굴 벽화에 나오는 곰이나 사슴과 같은 동물은 사람들에게 보여 준 것이 아니라 그 동물, 곧 신령에게 바치는 제사와 마법의 수단이었다. 어떤 교회의 성모 마리아 상은 보인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아 아직도 1년 내내 베일 속에 가려 있다. 그러나 영화는 대중에게 보여 주지 않으면 만들 이유도 없다.

 

벤야민에 따르면 영화는 관객이 예술 작품을 수용하는 태도에도 변화를 낳는다. 관객이 피카소의 그림을 수용하는 태도는 감상과 비평이 분리되어 있다. 관객은 피카소의 그림을 넋 놓은 채 감상할지언정 감히 비평할 엄두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관객이 채플린의 영화를 수용하는 태도는 감상과 비평이 결합되어 있다. 관객은 채플린의 영화를 감상하면서 곧 개인별로 평가하고 개인별 반응들은 상충하기도 한다.

 

벤야민은 영화가 예술을 감상하는 방법을 바꾼다고 말한다. 영화가 새로 불러 일으키는 감상 방법은 정신 분산이고 촉각 수용이다. 벤야민의 시절에도 영화가 노예의 소일거리고 무식하고 비참하며 지친 인간들의 오락이라는 개탄이 있었다. 그러나 벤야민에 따르면 이 개탄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려면 정신을 집중해 관조해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비롯한다. 영화의 감상은 건축물의 감상과 비슷하다 관광객은 유명 건물 앞에 서면 그림처럼 긴장된 주의력을 집중해 관조하지 않고 우연히 바라보고 손으로 익숙한 물건을 만지듯 감상한다. 긴장된 주의가 아니라 익숙함을 통한 감상이 촉각 수용이다. 또 정신을 집중하지 않고 분산한 사람도 익숙해질 수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비평하는 태도를 가지지만 긴장된 주의력을 집중해 비평하지 않고 팝콘을 먹으며 산만한 정신으로 비평한다.

 

벤야민은 제의 가치의 수용, 감상과 비평이 분리된 수용 태도, 정신을 집중한 관조 태도를 보수적인 것으로, 전시 가치의 수용, 감상과 비평이 결합된 수용 태도, 정신을 분산한 촉각 수용은 진보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영화에 대한 벤야민의 긍정적 평가는 현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 대한 견해에 기초한다. 인류는 청동 주화, 목각 판화, 앤쇄를 거쳐 사진, 영화, 녹음까지 복제 기술을 계속 개발했다. 특히 사진과 영화의 현대 복제 기술은 예술 작품의 대량 복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벤야민은 예술 작품을 기술로 대량 복제하는 현대에서는 예술 작품의 '아우라(aura)'가 몰락한다고 주장한다.

 

아우라는 문자로는 바람결을 의미하고 중세의 그림에서 예수나 성모 마리아나 성인의 머리 위에 있는, 후광이라 부르는 반원 모양의 이미지를 가리킨다.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은 전통 예술 작품이 지닌 현존성, 진품성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그림 <모나리자(Mona Lisa)>는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예술 작품의 현존성은 예술 작품이 여기 지금 있다는 성질이다. 그리고 <모나리자>가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는 현존성은 <모나리자>가 가짜가 아니라 진짜라는 진품성을 확인해 준다. 그러나 현대 기술 복제 시데에 대량으로 복제된 <모나리자>의 사진은 루브르 박물관에 지금 여기 있다는 현존성도 없고 진품도 아니다. 아우라가 현존성과 진품성이므로 사진으로 복제된 <모나리자>는 아우라가 없다. 현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인 사진이나 영화에서는 전통 예술 작품이 지닌 아우라는 몰락한다.

 

벤야민은 아우라의 몰락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아우라의 몰락은 전통의 권위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사진 예술을 정신분석학과 결합해 무의힉의 시각을 보여 줌으로써 대중의 지각을 확장한다. 영화는 관객이 예술 작품에서 제의 가치 대신 전시 가치를 수용하고 감상과 비평을 결합하며 정신을 분산해 예술 작품을 촉각 수용하게 만든다. 벤야민에 따르면 영화는 전통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청산하는 진보 운동을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힘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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