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대중 음악과 소비 사회의 욕망
현대 사회에서 사람의 취미를 형성하는 것은 예술미가 아니라 상품미이다. 상품미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체험을 불러일으키는 예술미와 달리 상품을 매력 있게 만들어 판매를 촉진하는 수단이다. 대중 음악 중 특히 록 음악은 기성 질서에 저항하는 측면이 있지만, 대중 문화를 통한 저항이 자본의 틀 안에서 놀 수 밖에 없다면 어느새 상품으로 둔갑해 자본의 이윤 추구에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소비가 있어야 생산도 이루어지는 소비 사회이고 사람들은 상품의 사용 가치가 아니라 기호 가치를 소비한다. 기호 가치는 지위와 심리의 차이를 표시하는 수단이다. 소비 사회에서 사람들이 채우려는 욕망도 자기를 남과 구별하는 차이에 대한 욕망이나 그러나 기호는 실상이 아니라 알리바이일 수 있고 사람들의 욕망 충족은 고된 삶을 잠시 잊는 마취제일 수도 있다.
01. 대중 음악, 이데올로기, 상품미(1-1. 대중 음악에 대한 오랜 쟁점)
대중 음악에 대해서는 오랜 쟁점이 하나 있다. 대중 음악은 문화 제국주의를 배경으로 발달했고 10대 학생 또는 노동자를 정치, 경제에 대한 현실적 관심에서 떼어 내려는 자본과 문화 산업의 영리한 책략일 뿐이라는 것이 하나의 관점이다. 반면 자본과 문화 산업의 극복은 시위나 파업 등 정치, 경제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대중 음악처럼 폭넓은 효과가 있는 문화 생활을 통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관점이다. 그렇다면 대중 음악은 자본과 권력에 투항하는 길일까, 아니면 저항하는 길일까?
이 오랜 쟁점은 대중 음악이 품고 있는 모순을 반영한다. 대중 음악은 대중의 일상 문화 생활이고 대중의 억눌린 삶의 조건을 반영해 만들어지므로 기성 질서의 억압에 의식적으로 저항하는 측면이 있다. 한편 대중 음악도 이윤을 추구하는 문화 산업의 일부이므로 젊은 세대의 여가와 용돈을 상업적으로 착취하는 측면이 있다.
대중 음악 그 중에서도 특히 1950년대부터 미국과 영국에서 발달한 장르인 록(rock) 음악의 역사는 저항 정신의 전통을 뚜렷이 보여 준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에게 열광한 미국의 10대 학생과 노동자, 비틀스(Beatles)에게 광분한 영국의 10대 노동자, 밥 딜런(Bob Dylan)과 함께 거리로 나선 베이비 붐 세대의 대학생, 베트남전에 반대한다는 명분 아래 우드스톡(Woodstock) 페스티벌에 모인 30만 젊은이, 펑크(punk)를 받아들인 베이비 붐 이후 10대, 메탈(metal)과 렙(rap)에 열광한 흑백 신세대 등은 모두, 기성 사회 질서에 저항하는 의식이 록 음악의 중요한 배경이라는 점을 잘 보여 준다. 록 음악은 정신 면에서 저항과 자유의 열정을 담은 음악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 록 음악은 등장 이후 언제나 상업주의와 한쪽 손을 잡고 있었다. 어떤 음악이건 시장에서 팔리지 않으면 대중 문화의 일부가 될 수 없었다. 또 레코드, 라디오, TV, 뮤직 비디오, CD, MP3 등 매체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으면 록 음악도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대중 음악과 매채ㅔ 산업에 종사하는 자본주의 전략가들은 10대의 용돈과 대중 음악가들을 끊임없이 공략했고, 구매력이 증가한 10대와 성공을 꿈꾸는 음악가들은 이 전략에 끝까지 저항할 수 없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도 할리우드에 영화 배우로 진출했고 밥 딜런도 어쿠스틱 기타 대신 전기 기타를 잡았다.
대중 산업과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대중 음악에 침투해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대중 음악을 즐기는 시간은 자유 시간이 아니라 노동을 재충전하는 시간이고 대중 음악은 노동 시간뿐 아니라 여가 시간에도 활발한 소비를 유도함으로써 자본의 이윤을 늘리는 수단이다. 대중 음악은 노동ㅇ르 방해하지 않도록 자본이 통제하는 오락이며, 학생과 노동자가 매일 학교와 직장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할 수 있게 만들 뿐이다.
그러나 대중 음악이 상업적으로 성공한다고 해서 반드시 자본의 이데올로기와 밀찰하라는 법은 없다. 대중 음악은 상업적 조직을 벗어나지 않더라도 젊은 세대의 일상생활 안에서 민주적 문화 생활 양식을 개발할 수 있다. 과거 귀족과 자본가에게 음악은 명상의 대상이었지만, 대중 음악의 팬들은 수동적 수용자가 아니라 적극적 개입자다. 대중은 음악을 단순히 수용하고 소비하는 도구로 기능하지 않고 대중 음악 안에서 의미, 가치, 즐거움을 생산하고 창조함으로써 거꾸로 제작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