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문화 산업과 영화
02. 대중문화의 두 얼굴(2-3. 스타일을 찾아서)
대중 매체와 문화 산업이 낳은 현대인의 일상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프랑스 철학자 르페브르(H. Lefebvre)는 현대인의 일상생활이 스타일을 잃어버렸다고 진단하고 스타일을 되찾자고 호소한다. 스타일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장치다. 스타일은 사소한 몸짓, 말, 도구, 그릇, 옷, 모자 등에 의미를 부여한다. 옛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옛날에는 농기구, 찻잔, 의자에도 스타일이 있었으나 요즘은 비싼 물건조차 기능 말고는 특별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옛 물건 가운데 기능이 모양, 구조와 통일되어 있는 작품이 많다. 옛 물건을 좋아하고 모으는 것은 잃어버린 스타일에 대한 현대인의 향수다.
일산생활은 반복이 특징이다. 현대인은 거의 같은 시간에 깨어나 먹고 나가서 공부하고 일하고 돌아와서 잔다. 복잡한 도시에서는 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고 더러 친구도 만나지만, 대부분의 사람과 사물은 돈, 힘, 이름에 대한 욕망을 채우는 것 말고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이런 사람과 사물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스타일이 없다. 그래서 현대인은 허무, 권태, 무력을 느낀다.
왜 현대인은 스타일을 되찾아야 할까? 의미를 따지고 부여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매일 만나는 모든 사람과 사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면 그만큼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르페ㅐ브르에 따르면 스타일 없는 일상생활은 소비를 조작하는 현대 사회의 산물이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소비는 광고와 직결되어 있다.
광고는 단순히 상품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창출한다. 욕망을 창출하고 조작하는 광고 제작자는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이미지를 이용한다. 많은 광고에 등장하는 옷 벗은 모습은 현대 사회의 대표 이미지다. 상품의 품질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광고를 보고 옷, 화장품, 자동차를 사는 사람은 품질이 아니라 상상한 이미지를 소비한다.
유행이 일상생활을 지배한다. 일상생활은 매일 유행에 대한 감탄이나 비난으로 이어진다. 내가 오늘 무슨 옷을 입고 남이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내 옷이나 남의 옷이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 아닌지가 큰 관심사다. 유행을 따를 것이냐 말 것이냐가 죽느냐 사느냐는 햄릿식 문제의 현대판이다. 일상생활에서 사람은 항상 유행과 자기의 욕망을 점검해야 한다. 르페브르에 따르면 이것이 스타일을 찾는 것보다 더 피곤한 일이다.
멋쟁이로 소문난 파리 여성들은 개인마다 헤어스타일, 화장, 옷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파리 여성은 자기에게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이라고 판단하면 거의 평생 동안 한 스타일을 고집한다. 자기에게 어울린다고 판단한 스타일이 제각각일 테니까 파리 여성은 패션은 서로 다로고 개성이 있다. 그러나 TV에서 갓 튀어나온 듯 똑같은 헤어스타일, 화장, 옷으로 거리를 누비는 젊은 세대는 패션에서 개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스타일을 되찾으려면 지루하게 되풀이되는 일상생활을 극복하려는 꿈을 꾸어야 한다. 현실을 떠나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스님이 될 수는 없다. 똑같은 일상생활에 돈 버는 것 말고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꿈을 꾸어야 한다. 꿈을 꾸지 않으면 재미 없는 일상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꿈을 꾸면 남들과 개성 있게 어울릴 수 있는 자기 스타일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