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대중 음악과 소비 사회의 욕망
02. 소비 사회와 록 음악(2-2. 록 음악과 욕망)
보드리야르의 눈으로 대중 음악 또는 록 음악을 보면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록 음악은 젊은 세대, 특히 10대의 음악의 기호다. 1956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애끓는 호텔(Heartbreak Hotel)>을 발표할 무렵 미국 학교에는 열심히 공부해야 출세할 수 있다는 엘리트주의가 널리 퍼져 있었다. 10대 학생은 억압과 폐소 공포증을 자아내는 이런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고, 때마침 나타난 분출구가 로큰론(Rock'n'roll)이었다. 로큰롤은 '흔들고 돌린다'는 뜻이며 성교의 완곡한 흑인식 표현이다. 학생들은 허리 아래로 교모하게 흔드는 엘비스를 보고 열광했다. 또 노동자 출신 엘비스는 기성 사회의 가치관에 순응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다는 생각을 퍼뜨렸다. 록 음악은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언제나 젊은 세대가 자기들만의 소유권을 주장한 음악이고, 다른 세대에 대해 음악적 차이를 나타내는 기호다.
그러나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록 음악도 실상이 아니라 알리바이다. 젋은 세대는 비록 록 음악으로 자신의 지위와 심리의 뚜렷한 차이에 대한 욕망을 채우지만, 이런 욕망 충족은 소외된 삶을 잠시 은폐하는 마취제일 수 있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낀 채 공부하고 일하는 젊은 세대도 노는 게 아니라 고달프게 공부하고 일하는 자신을 달래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욕망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돈, 힘, 이름에 대한 욕망인 소유욕, 권력욕, 명예욕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욕망의 대표 선수들이다. 또 돈, 힘, 이름은 욕망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욕망르 채우는 수단이다. 돈을 벌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이 없으면 힘이나 이름이라도 있어야 한다. 게다가 돈을 벌면 권력과 명예도 따라온다.
그러나 사람의 욕망은 돈, 힘, 이름만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다. 돈, 힘, 이름은 욕망을 채우는 현실적 수단이지만 사람은 비현실적 수단으로 욕망을 채울 수 있다. 좋은 영화를 보면서 즐거운 까닭은 팝콘이 배를 채워 주기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에게 동화한 일종의 환각 체험이 현실에서 채우지 못한 욕망을 대신 채워주기 때문이다. 환각 체험은 꿈처럼 외부 자극이 없는데도 이미지를 떠올리는 체험이다. 영화는 스크린에 비친 빛이 우리 눈을 자극하지만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마치 눈을 뜨고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대중 음악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욕망도 환각 체험과 깊은 관계가 있다. 소년이 스타의 공연 모습을 보면서 몇 시간 동안 펄쩍펄쩍 뛰어도 피곤한 줄 모르는 까닭은 적어도 그때만큼은 제대로 신들린 무당처럼 환각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돈, 힘, 이름 같은 현실적 수단이 아니라 비현실적 수단 곧 환각 체험으로 욕망을 채울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먹이, 짝, 터에 대한 욕망을 힘으로 채우는 사자나 늑대와 사람이 다른 점이다. 그래서 사람은 개나 소와 달리 꿈을 먹고 산다는 말도 있다.
록 음악은 머리로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되고 몸으로 느껴야 한다는 말도 록 음악이 환각 체험을 제공하고 대중은 환각 체험으로 욕망을 채운다는 뜻이다. 환각 체험을 통해 채우는 욕망에는 돈, 힘, 이름으로 채우는 각성 상태의 욕망이 낳은 추악한 병폐가 없을 수도 있다. 또 대중은 록 음악을 수용하는 도구로만 기능하지 않고 이 음악을 통해 낡은 가치를 대신하는 새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모인 록 음악가들과 30만 팬들은 비록 실패했지만 음악을 통해 전쟁을 끝내고 돈에 찌든 사회를 바꾸려는 꿈을 꾸었다. 인류 역사에서 음악이 문화 변혁, 나아가 사회 변혁의 동력으로 주목받은 적은 20세기를 제외하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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