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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해하기

문화와 철학(11)

by Be_ni 2023. 9. 21.

2장 대중 음악과 소비 사회의 욕망

03. 감성과 이성(3-1. 문화의 역사 속에서 대중 음악)

100년 뒤에도 비틀스가 살아 있을까? 비틀스가 노래를 시작한 지 반세기가 되었지만 아직도 비틀스는 살아 있다. 비틀스의 노래는 아직도 많이 필리고 이 노래의 저작권은 한때 그 일부만 소유한 가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에게 매년 4,000만 달러의 저작권료 수입을 안길 만큼 천문학적 금액의 가치가 있다. 현재 우리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있듯이 100년 뒤에도 사람들은 비틀스의 노래를 들을 것이다.

문화 속, 대중음악에 대한 생각

100년 뒤에도 대중 음악이 살아 있을까? 우리는 컴퓨터와 인터넷 덕분에 보통 사람의 시시한 하루조차 기록으로 남기고, 따라서 후대 역사 학자에게는 사료가 너무 많아서 탈이 날 시대에 살고 있다. 여러 공상 과학 영화가 예상하듯이 지구가 황폐해지거나 망하지 않는다면 대중 음악이 분서갱유처럼 사라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원하는 사람은 비틀스뿐 아니라 엘비스 프레슬리부터 록 그룹 너바나(Nirvana)까지 언제 어디서나 듣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살아 있는 것일까?

 

역사는 가속도가 있다. 원시시대에서 고대로 넘어오는 데 500만 년,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오는 데 1만 년,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데 1000년이 걸렸지만 근대에서 현대까지 걸린 시간은 500년이었다. 더욱이 근대와 현대 문화의 역사는 새로 등장한 대표 문화의 점령 기간을 대개 한 세기 이상 허용하지 않았다. 16세기는 연금술, 점성술 등 자연 마술, 17세기는 자연 철학이라 불린 과학, 18세기는 조성 음악, 19세기는 낭만주의 예술과 오페라, 20세기는 대중 음악, 영화 등 대중 문화가 세기의 문화를 대표했다. 21세기에도 새 문화가 대중 문화를 대신할 것이다. 현재 컴퓨터의 발달에 힘입어 등장한 사이버 문화가 21세기를 이끌 새 문화의 유력한 후보로 주목받고 있지만 모를 일이다. 21세기는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화의 역사에서 대중 음악의 의미는 20세기 안에서 짚어야 하고 21세기로 넘길 수 없다. 적어도 대중 음악의 문화 실험은 20세기에 마감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 실험의 핵심은 대중 음악이 사회 변혁의 동력으로 기능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낡은 사회에 대한 비판과 새 사회에 대한 비전이 사회 변혁의 동력이 될 수 있는 요소라면, 서양 대중 음악은 이미 1960년대에 가장 중요한 실험 결과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는 실패와 좌절이었다.

 

1969년 8월 뉴욕 근처에서 30만 관중이 모여 3일 동안 현대판 디오니소스 잔치를 벌였다. '우드스톡 음악 예술 페스티벌(The Woodstock Music and Arts Festival)'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한다는 통일된 명분 아래 젊은 세대의 힘을 과시했고 유명한 록 밴드가 거의 총출동했다. '3일간의 음악, 평화, 사랑 그리고 비와 약물의 잔치'라고 불린 우드스톡 페스티벌에서 압권은 전기 기타의 신으로 불리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가 연주한 미국 국가 <성조기(The Star Sprangled Banner)>였다. 지미 헨드릭스는 전기 기타로 헬리콥터 뜨는 소리, 로켓 날아가는 소리, 폭탄 터지는 소리 등 베트남 전쟁을 묘사했다.

 

그러나 20세기 디오니소스 잔치는 단 한 번으로 끝났다. 1970년 켄트 주립대학교에서 닉슨(R. Nixon) 대통령이 캄보디아에 미군을 파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시위가 벌어졌다. 군인들이 학생들의 무릎을 겨냥해 총을 쏘았지만 결국 4명이 죽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꾼 학생들은 이제 막다란 골목에 이르렀다는 암울한 느낌을 받았다. 지미 헨드릭스, 여성 록 스타 제니스 조플린(Janis Joplin), 록 그룹 도어스(Doors)의 리더 짐 모리슨(Jim Morrison) 등 '3J의 죽음'도 이런 느낌을 증폭했다. 우드스톡 세대는 켄트 주립대 발포 소식과 스타들의 사망 소식을 계기로 문화 혁명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고 발라드 같은 비정치적이고 부드러운 대중 음악으로 퇴각했다. 우드스톡 페스티벌은 록 음악을 통해 새 공동체를 모색하려는 시도의 절정이자 내리막길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록 음악의 사회 변혁 동력은 바닥이 났지만 개인 변신 동력은 아직 남아 있다. 개인은 모래알처럼 많고 개인의 무의식은 바다처럼 넓다. 록 음악이 미래의 문화에 긍정적으로 물려줄 요소는 이미 실패한 새 공동체 실험이 아니라 개인 의식의 확장 실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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