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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② 고전 해제

제 3장 <서양사상> 군주론(3)

by Be_ni 2024. 2. 29.

정치학적 의의와 그 영향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이란 작은 책에 서 분열된 조국의 통일을 희구하면서 강력한 군주에 의한 전제정치를 주장하여, 군주권의 우위에 의한 통치자의 지배원리를 강조하였다.

그는 역사적 수난과 정치적 암흑기를 살아가면서, 로마 제국적인 유럽질서의 회복을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하면서 이 '최대선'을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바쳐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즉 그는 법에 의한 유럽사회의 회복과, 이를 위해 잠시나마 일단 무정부상태를 수습할 수 있는 인물과 수단으로 체자레 보르지아와 그의 잔인무도한 정치수단과 방법을 빌렸을 뿐, 그의 최종목적을 묘사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저자는 인간성에 대한 존경보다는 인간의 심리적인 약점을 사정없이 폭로하면서 새로운 정치의 기술을 논하고 있는데, 이러한 점에 소위 마키아벨리즘의 본질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이후 그의 영향은 지속적으로 미쳤다. 17세기 영국의 정치 철학자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영향을 미쳤고, 독재자들이 애독하는 핸드북이기도 했다. 무솔리니, 히틀러, 스탈린 등이 애독한 것으로 전해지며, 특히 나폴레옹은 밤마다 베개 밑에 『군주론』을 놓고 잤다고 알려져 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반反마키 아벨리즘 』(1740)을 써서 마키아벨리즘의 비인도성을 비판했지만, 실제로는 대왕 자신도 마키아벨리즘을 구사했다.

한동안 마키아벨리는 악마의 화신처럼 증오를 받기도 했으나, 이제 정치사상가 중에서 마키아벨리를 그렇게 격렬하게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늘날 마키아벨리즘은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에서 생긴 '필요악'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어느 역사적 사실은 그 사실이 이루어진 시대의 역사적 환경 속에서만 진실하게 이해될 수 있다.”

-19세기 독일의 역사가 랑케

 

“인류가 타락하지만 않았어도 이 모든 기술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키아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