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
루소의 『고백록』, 톨스토이의 『참회록』과 함께 서양의 3대 참회 록으로 불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그의 젊은 날의 지적 방황과 종교적 모색을 기록한 책이다. 즉, 『고백록』은 중세 유 럽이 기독교적인 사상의 틀을 갖추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그 자 신의 자서전이자, 한 인간의 내면에 일어나는 어둠과 빛, 선과 악, 육체와 영혼의 처절한 갈등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한 구도자가 보여주는 영계靈界와의 대화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메마른 영혼에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생애와 저술활동
게르만 민족의 이동이 시작된 로마 말기의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교부철학의 집대성자로, 스토아 학파의 토마스 아퀴 나스와 함께 중세 기독교 최대의 사상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의 생애는 그의 저서 『고백록』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당시 로마의 속국이던 북아프리카의 루미디아(지금의 알제리)에서 세금징수관이자 마니교 신자인 아버지와 독실한 크리스천인 어머 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시 · 암송 · 웅변 등에 소질을 보이기도 했고, 독학으로 라틴 문학, 특히 베르길리우스를 애독했으며 수사학에도 뛰어났다.
청년시절에는 타락한 생활을 하기도 하였으며, 19세 때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를 읽고 철학에 눈을 떴다. 그리하여 참지혜를 구하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크리스트 교에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서의 소박한 문체나 카톨릭 교회의 보수성에 만족하 지 못하여, 빛과 어둠이라는 이원론을 주장하는 마니교의 합리주 의에 이끌렸다. 그 뒤 9년 이상 마니교를 접하면서 마니교적인 미학서『미와 적합』을 썼다.
그러나 383년 로마에서 신플라톤주의 학파를 접하고 마니교를 결별했으며, 이듬해에는 밀라노에서 수사학 교수가 되었다. 386년 플로티노스 등의 신플라톤주의의 책을 읽고 '불변의 빛'을 보는 신비적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때 진리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다.
또 밀라노 주교인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고 감동하여, 그해에 크리스트 교로 개종하였다. 개종 후 교수직을 그만두고 밀라노 교외의 산장에서 토론과 명상을 하면서 『독어록』 등 철학적 대화 편을 저술했다.
거기서 성서의 「시편」 제4편을 읽고 받은 감동은 그의 정신에 큰 전환을 가져왔다. 388년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운 친구들과 수도원 생활을 하는 한편, 391년 히포의 주교 발레리우스의 요청에 따라 사제가 되었고, 396년 발레리우스가 죽자 히포 주교가 되었 다. 민중들과의 접촉을 통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색은 성서의 문 구 속에서 신의 말을 찾아내어 전달하려고 하는 해석학적인 방법을 취함으로써 더욱 깊어져갔다.
397년경부터 『고백록』을 쓰기 시작하여 3년 만에 끝내고, 400년경부터는 『삼위일체론』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어 426년에는 「신국론』을 완성했다. 그는 34년간이나 주교직을 지켜나가면서 크 리스트 교 사상의 형성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430년 반달족이 히포를 공격하였는데 그로부터 3개월 후 76세 를 일기로 사망하였으나, 반달족은 3개월 동안이나 히포를 유린하면서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도서관과 성당은 손대지 않았다 한다.
교부철학과 스콜라 철학
흔히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 한다. 왜냐하면 신학이 중세의 학문과 사상을 압도하여 철학이나 자연과학 등 기타 학문은 그 시녀역할에 만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중세신학 발전의 주체세력은 '파리' 대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교수들이었으므로, 신학은 학교(스콜라) · 사람들의 학문(스콜라티시즘)이란 명칭이 붙었다. 중세신학의 발전은 크게 2분 될 수 있는데 ① 예수 사후 8세기까지 신부들에 의해 발전된 교부철학과 ②9세기에서 15세기까지 발전된 스콜라 철학을 들 수 있다.
교부철학
교부철학은 주로 크리스트 교의 정통교리를 하나로 체계화하여 교회의 권위를 확립하고자 하는 아우구 스티누스 등의 교부들에 의해 발전되었는데, 그는 크리스트 교의 '신앙'을 그리스의 '이성'으로 설명하기 위해 초월적인 이데 아 사상을 강조한 플라톤주의를 받아들였다. "나는 믿기 위해 알 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 믿는다"는 말로써 신앙과 이성의 타협을 시도하였다. 그의 크리스트 교 사상이 잘 반영된 『신국 론』에서 그는 신국, 즉 내세는 지상의 세속적 역사과정 속에 투영된 것으로서, 인간역사의 과정이 신의 섭리의 실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 인간은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 신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교회’는 인간구원을 위한 유일한 기관이라고 생각했다.
스콜라 철학
스콜라 철학은 '교회의 리철학'으로서 중세철 스콜라 철학 학과 학문의 절정을 이룬 중세의 종합적 세계관이다. 대표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플라톤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더 가까운 수정된 실재론을 주장하여, 보편적 존재는 영원불변의 실재성을 갖지만 본질로서 개체 안에 존재한다고 주장하여 교회 가 수용할 수 있는 최종적인 공식을 만들어냈다. 그는 대표적 저술인 『신학대전神學大全』에서 스콜라 철학의 정수를 제시하였는데, ① 자기를 부정하는 학설을 제시하고 ② 자신이 부정하고자 하는 학설을 제시하며 ③ 자기 자신의 의견을 진술하고 ④ 자기 자신이 의존하는 논거를 제시하며 ⑤ 최초에 지적한 이론을 논박하는 독특한 논리전개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관찰된 사 실에 입각하지 않은 순수한 합리적인 인간사고의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지적 성취를 이루었다.
'동서고전 > ② 고전 해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3장 <서양사상> 고백록(3) (1) | 2024.02.26 |
---|---|
제 3장 <서양사상> 고백록(2) (1) | 2024.02.25 |
제 3장 <서양사상> 정치학(3) (0) | 2024.02.23 |
제 3장 <서양사상> 정치학(2) (0) | 2024.02.22 |
제 3장 <서양사상> 정치학 (1) | 2024.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