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서고전/① 동 · 서양사상의 흐름과 고전

제 2장 중국사상의 흐름과 고전(3)

by Be_ni 2023. 12. 30.

전한말~북송중기: 경학과 종교사상

경전연구 활성화

제2기의 시작을 이루는 유가일존의 사상은 왕망의 새로운 유교존숭 정책에 따라 더욱 강화되었다. 후한도 유교존숭 방침으로 이어져 유교가 국가지도 이념으로 공인되었고, 유교를 국책으로 하는 상황이 이후 청나라 말 기의 제3기가 끝날 때까지 거의 2000년 동안 계속되었다. 이처럼 유가사상이 권위를 갖게 되자 유교경전의 권위가 높아지고, 경전의 연구 주석이 활발히 이루어져 제2기 동안에 각 경전에 대한 주석서가 수없이 만들어졌다. 경전도 5경五經(詩 · 書 · 易 · 禮  · 春 )에서 점차 수가 늘어나 13경이 되었다. 한편 경전의 원본 및 해석의 정리 통일을 꾀하려는 움직임도 있어서 당나라 초에 『오경정의가 만들어진 것을 비롯하여, 그것을 확대시켜 제2기가 끝날 때까지 『십삼경주소+三經注疏』라고 불리는 표준적인 주석이 성립하였다. 이와 같이 주석을 학문으로 하는 경학이 매우 활성화되었고, 유교는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필수적인 교양으로 중시되기는 했지만, 그 권위는 다분히 형식적이었으므로 사상으로서의 활력이 부족하였다.

 

도참사상

실제로 민간의 실제 생활에 깊은 연관을 갖고 있던 것은, 한나라 때에는 음양오행설이나 참위설緯說 등의 신비사상, 위진魏晉시대(3~4세기)에는 노장사상, 남북조시대로부터 수 · 당시대에 와서는 외래의 불교와 신흥의 도교였다. 음양오행 사상은 전한 · 후한을 통해서 성행했는데, 원래는 선진시대 음양가의 계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음양오행의 변화와 결합에 따라서 자연현상과 인간계의 사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었지만, 점차 비합리 · 미신적인 요소가 증가되어 신비화되었다. 참위는 참기記와 위서를 말한다. 참기는 예언서, 위서는 천인 합일 · 재이서상災異瑞의 사상 및 음양오행 사상 · 신선사상 등의 신비사상에 의하여 경서를 해석한 서책을 말한다. 참讖은 선진시 대부터 행해졌지만 특히 한나라 때 유행하여 위서의 설에도 혼입 되었다. 위서는 전한시대 말부터 많이 만들어졌으며 위서의 설은 정통경학에도 도입되었다. 한나라 때에는 유가사상 전체가 신비사상 영향 아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진시대에는 노장사상이 유행하였다. 귀족 등의 상류사회에서는 정치논의나 인물평론과 함께 현학이라 불리는 철학 논의가 성행하였는데, 삼현호(『노자』『장자』『역경』)이 화제에 많이 올랐다. 죽림칠현 등으로 유명한 청담도 이러한 종류의 담론이었다.

 

중국적 불교의 성립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된 연대는 분명치 않지만, 제2기 초에 서역을 거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불타가 신선과 동일시된 시기도 있었지만, 이윽고 명상에 의하여 마음을 맑게 하고 명지를 얻는 가르침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위진시대로부터 남북조에 걸쳐 점차 성행하여 많은 불전(주로 대승불교의 경전)이 반입, 한역漢譯되었다. 일반에게 그 교리를 쉽게 하기 위하여 노장사상으로 불교용어를 설명하려 한 '격의불교가 한때 유행하기도 했으나, 도안道이나 인도출신의 구마라습摩羅什 등의 본격적인 불전연구와 역 경譯經에 힘입어 격의의 영역을 벗어나 중국불교의 기초를 확립하 고 법현·현장 등은 직접 인도에 가서 불전을 가지고 돌아와 한역하였다. 또 도교와의 마찰로 수차례에 걸친 폐불정책의 타격을 받으면서도 발전을 거듭했으며, 특히 수. 당나라 때 (6세기 말~9세기) 에는 명승이 배출되어 수나라 길장 등의 삼론종, 지의 등의 천 태종, 신행 등의 삼계교 현장 등의 법상종, 법장 등 당나라의 화엄종, 도선 등의 율종 사람 불공삼장 등의 밀교 북인도 敎 혜능 · 신수 등의 선종, 선도 등의 정토교 등 많은 종파가 성립하여 중국 독자적인 불교가 확립되었다. 특히 중국남방 선종의 창시자인 혜능은 제자들을 통해 『육조단경』을 남겨 인도식 불교와 는 상당히 다른 중국식 불교의 특징을 잘 보여주었다. 이상 중국 불교의 전개를 살펴보면, 폐불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정치권력의 비호를 받아 국가진호의 종교로 발전했다. 또한 교의敎義로서는 매우 고도의 이론이 전개되었지만, 민간에서는 현세 구복적 성격이 강했다.

 

국가에 의한 도교의 발전

도교는 후한 말 장릉이 일으킨 천사 도天師道(오두미교)와 이를 발전시킨 장각의 태평도太平道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종래의 노장사상과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신선사상 등을 수용하여 건강법이나 연단술 丹術, 기타 장생과 복록을 얻는 법을 설하는 현세적인 민간종교로 성장해갔다. 도교는 어느 정도 도가의 설을 받아들였고, 노자를 교조신처럼 받들었지만 노장의 도가사상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 다. 교의로서는 도가 외에 불교와 유교의 설까지도 받아들였다. 민간종교로 출발했지만 북위의 구겸지에 이르러 도교라는 종교로 발전하게 되고, 북위의 국교가 되어 폐불사건을 일으키면서 당에 이르러서는 최대의 세력을 떨쳤다.

 

다음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