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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① 동 · 서양사상의 흐름과 고전

제 2장 중국사상의 흐름과 고전(2)

by Be_ni 2023. 12. 30.

태고~전한말기(BC 1세기 말)

 

중국사상의 성립

제1기는 중국사상의 성립기로, 은殷나라 때인 BC 15세기 무렵 이후이다. 은나라 때에는 제 帝(上帝라고도 함)로 불리는 하늘의 신을 최고 신으로 삼고, 각 씨족의 조상신, 산 · 강 · 초목 등 기타 여러 신들을 숭상하여, 이러한 여러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행운을 기원하며 또 중요한 행사는 점을 쳐서 신의를 확인하고 난 뒤 실행에 옮겼다.. 주周나라 때에도 은나라 때의 상제신앙을 이어받아, 하늘을 신앙하였다. 그래서 주나라 초기에 주공이 제정했다고 전해지는 '주례는 하늘과 그 밖의 여러 신을 모시는 종교의식임과 동시에 천하통치를 위한 정치형태이자 동시에 신분제도를 규정하는 예제이기도 하였다.

 

제자백가 사상

중국사상은 춘추시대 후기부터 전국시대에 걸친 시기 6세기 말~BC 3세기 말)에 (BC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때는 중국사상사에서 최고의 황금시대로 제자백가 불리는 수많은 학파. 사상가가 배출되었다. 라그 가운데 주요 사상가 군群은 유가 묵가. 명가家 · 도가 道家 · 법기法家 음양의 6가였다.

 

유가사상

가장 일찍 등장한 것은 유가로서, 공구丘(공자)를 시조로 하여 맹가(맹자), 순황(자) 등으로 이어지면서 유력한 학파가 되었다. 유가는 전통적인 예에 입각하여 인류의 질서와 도덕을 중시하고, 이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인 격의 도야를 목표로 하였다. 또 그러기 위해서 실천해야 할 인· 의 · 예 · 지 · 신 등의 덕목을 강조함과 동시에 그 성과를 정치의 장으로 확대시켜, 덕치주의를 주장했다. 이 '훌륭한 인격의 형성'과 이것을 기반으로 하는 '덕치'의 구상은 수기치인의 도 修己治人道라 하여 이후 오랫동안 유가사상의 근본을 이루었다. 묵적(묵자)으로 대표되는 묵가는 유가와 비슷한 점도 있지만, 유가의 형식주의와 불평등성을 신랄히 비판하고, 겸애교리兼愛交利, 즉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남도 사랑하여 자타가 상호 간에 이익되게 해야 한다면서 인간평등을 외쳤다. 아울러 절약과 비공非功 등 공리주의적인 주장을 폈다. 혜시惠施 · 공손룡公孫龍 등으로 대표되는 명가는 사람의 인식과 언어의 논리를 분석하고 고찰했다. 도가의 무無사상의 성립은 이 같은 명가의 논리에 관한 고찰과 관계가 있었다.

 

도가사상

이이(노자)와 장주(장자)로 대표되는 도가의 사상은 '무'라는 성격을 가진 '도'를 만물의 근원으로 제시하고, 사람은 그 '무'인 '도'에 따라 살아야 한다 는 '무위자연'을 설하며, 여러 집착에서 초월하여 절대경 지에 이르는 것이 진실로 자기를 완성하는 길이라 하였다. 그리고 주의 입장에서 유가가 중시하는 '예'를 비판한 분명히 성격이 다른 사상이다. 도가사상은 상식적인 사회생활에 대하여 소극적이고 비판적인 사상이었다. 법가는 봉건제에서 중앙집권체제로 변화해 가고 있던 시대의 흐름에 편승한 활동을 하였다는 점에서 다른 학파와는 성격을 달리하였다. 전국시대 말기부터 진. 한 시대초에 걸쳐(BC 3세기 후반~BC 2세기 중엽) 여러 면으로 사상의 정리와 이론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또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그 뒤를 한이 이어받아 강력한 제국이 성립되자 이것을 이론화시킬 정치 철학이 요구되는 동시에 사상의 통제가 시도되었다. 진나라 때에 는 법가사상에 의한 사상통일이 이루어져 유가는 분서갱유焚書坑儒 라는 심한 탄압을 받았다. 

 

관학화된 유교

한나라 초기에는 '황로사상黃老思想’이 유행했는데, 이것은 법가사상을 토대로 하여 노자의 허정무위虛靜無爲의 설을 도입한 통치술 및 여기에 부수되는 처세관이었으나, 무제(BC 2세기 후반) 때부터 유가사상 존중의 경향이 나타났다. 그리고 무제는 유교사상으로 천하의 사상을 통일해야만 한다는 취지의 동중서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교 국교화의 길을 열었다. 즉 전한 시대 말 성제 · 애제 무렵에 이르러 그 결실을 맺게 되어, 제자백가의 다양한 사상 가운데서 유가사상만이 정통사상으로 인정받는 유가일존의 상황이 도래하였다. 이 당시 역사 서술에서 획기적인 발전이 있어, 전한의 사마천과 후한의 반고에 의해 사는 경에서 독립하여 독자적 학문으로 발전하였다. 사 마천은 『사기』에서 독특한 기전체를 확립하고, 반고는 『사기』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한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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