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트교 사상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약 1천 년간 지속된 중세는 그리스-로마 문화의 잔잔한 호수에 새로운 '불순물'이 힘차게 쏟아져 흘러들어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불순물이 게르만 민족이라 할 수 있는데,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에 호수는 다시 맑아지면서 새로운 물줄기가 근대라는 큰 바다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중세 속에서 계속 줄기차게 나오는 크리스트교의 샘은 서양사상의 또 다른 원류가 되었다. 원래 초기의 크리스트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수록된 『구약성서』 를 경전으로 하는 인간적인 종교였다. 그 후 구약성서에서 구세주로 예언되었던 예수(Jesus Christ)가 나타나 세계평화주의적 복음을 전파함에 따라 크리스트교는 일반대중의 정신생활 속으로 침 투하게 되었다. 예수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사랑의 윤리를 강조하였다. 이어서 베드로나 바울과 같은 사도들에 의해서 크리스트교는 세계종교로서의 기반을 다지 게 되었다. 이러한 사도들의 복음활동과 예수의 가르침을 수록한 경전이 『신약성서」이다. 로마 정부는 313 년에 밀라노 칙령을 반포하여 크리스트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그 후 중세에는 인간중심의 사상이 '신' 중심의 사상으로 전환되었다. 신 중심의 사상에서는 우주의 창조주인 하나님의 절대적 진 리를 우선적으로 믿고, 이를 실천함으로써 인간의 행복과 영생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신 중심의 윤리사상은 중세 유럽의 생활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흔히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 한다. 왜냐하면 신학이 중세의 학문과 사상을 압도하여, 철학이나 자연과학 등 기타 학문은 그 시녀역할에 만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중세의 신학발전의 주체세력 은 파리대학을 중심으로 한 대학교수들이었고, 중세신학의 발전은 크게 2분될 수 있다. ①예수 사후 8세기까지 신부들에 의해 발전된 교부철학과 ②9세기에서 15세기까지 발전된 스콜라 철학을 들 수 있다. 교부철학은 주로 크리스트교의 정통교리를 하나로 체계화하여 교회의 권위를 확립하고자 하는 아우구스티누스 등의 교부들에 의해 발전되었는데, 그는 크리스트교의 신앙을 그리스의 이성으로 설명하기 위해 초월적인 '이데아' 사상을 강조한 플라톤 주 의를 받아들였다. "나는 믿기 위해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알 기 위해 믿는다"는 말로써 신앙과 이성의 타협을 시도하였다. 그 의 크리스트교 사상이 잘 반영된 「신국론』에서 그는 신국神國, 즉 내세는 지상의 세속적 역사과정 속에 투영된 것으로서, 인간역사의 과정이 신의 섭리의 실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 인간은 교회를 통해서 신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교회는 인간구원을 위한 유일한 기관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의 자서전 『고백록』에서는 그 의 젊은 날의 지적 방황과 30세가 넘어서야 기독교에 귀의한 종 교적 개종과정을 담담히 고백하고 있다. 스콜라 철학은 교회의 교리철학으로서 중세철학과 학문의 절정을 이룬 중세의 종합적 세계관이다. 대표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플라톤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더 가까운 수정된 실재론을 주장하 여, 보편적 존재는 영원불변의 실재성을 갖지만 본질로서 개체 안에 존재한다고 보며, 교회가 수용할 수 있는 최종적인 공식을 만 들어냈다. 그는 대표적 저술인 『신학대전神學大全』에서 스콜라 철 학의 정수를 제시하였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근대 초기 (14~16세기)의 사상이 형성될 수 있었던 계기는 14~16세기에 나타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운동에 찾아볼 수 있다. 르네상스는 중세 신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연적이고 현실적인 인간본성을 다루었던 고대 그리스와 초기 로마시대의 문예로 돌아가자는 운동으로서, 기본적으로는 '인본주의' 성격을 띠고 있다. 한편 이 운 동은 고대사상에로의 맹목적인 복귀만을 추구하지 않고, 고대사상 중에서도 형이상학이 아닌 인간현실에 바탕을 둔 지식이나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이 시기에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는 역사서술에 있어 객관적이 고 과학적인 역사를 주장했는데, 『군주론』에서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군주에게 수단과 방법의 광범위한 선택을 허용하여, 그간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인간의 정치적 속성을 드러냄으로써, 정치를 완전히 '세속적인 세계이해'에 기초하여 파악한 최초의 근대적인 정치이론서를 저술했다. 르네상스는 근대 자연과학의 진정한 출발점 역할도 했다. 1543 년 코페르니쿠스는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에서 중세의 우주관인 천동설을 뒤엎고 지동설을 주창하였고, 동년에 인체 해부학자 베살리우스는 『인체구조론』을 저술하여 인체구조의 해명에 중요한 진전을 이룩했다. 르네상스 운동과 동시에 일어난 종교개혁 운동의 기본정신 역 시, 세속화된 중세교회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순수했던 초기 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다. 중세교회의 권위와 전통은 봉건사회의 신분제를 확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로 인해 개인의 내면적인 신앙생활은 점차로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되었다. 이러한 종교계 자체 내에서의 개혁운동을 시 도한 대표적인 인물은 루터다. 그는 독일의 로마교회가 면죄부를 판매한 것에 대하여 '95개조 반박문'을 제시하며 항의하였다. 이 러한 운동은 그 후 스위스의 츠빙글리, 칼뱅 등에 의해 계승되었 고 전 유럽에 퍼져 프로테스탄티즘을 형성시켰다. 또한 영국에서 는 16세기 후반에 청교도주의(puritanism)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처럼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서 나타난 사상의 핵심은 로마 말기부터 중세까지 1000년 동안 지배해온 신 중심의 윤리에서 벗어나 인간의 현실적 삶을 중시하는 데 있으며, 이는 근대 서양윤리 사상의 형성에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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