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시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기원전 334년)부터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제국을 건설할 때 (기원전 30 년)까지 300년을 '헬레니즘 시대'라 한다. 동서융합정책으로 그리스의 이상은 대부분 상실되어, 새로운 문명 즉, 그리스 문화와 동 방문화가 혼합되어 새로운 그리스 풍의 세계적인 성격을 띤 문화 가 형성되었다. 이 문명을 고전적인 그리스 문화(Hellenic Culture)와 구별하여 헬레니즘 문화(Hellenistic Culture)라고 부른다. 폴리스를 중심으로 발달한 그리스 인들의 공동체적 생활양식은 그리스의 국력이 쇠퇴함에 따라 점차 개인주의적 생활양식으로 전환되었다. 특히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그리스 문화와 페르시아 지방을 위시한 동방문화가 융합되어 범세계적인 헬레니 즘 문화가 발전되어 감에 따라, 그리스 인들의 자유로운 사유와 행 동은 사회적으로 제약을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개인적 안심입명을 시도하는 이기주의나 세계시민의 철학사상이 전개되었다. 이처럼 그리스 문화를 로마까지 연결시킨 교량적 역할을 한 헬레니즘 문화는 상대주의·세계주의 · 개인주의 · 도피주의를 그 특징으로 하는데, 대표적인 사상에는 스토아 학파(금욕주의 사상)와 에피쿠로스 학파(쾌락주의 사상)가 있다. 스토아 학파의 금욕주의 사상은 기원전 4세기 말에서 3세기 초에 제논에 의해 제시되었다. 제논은 인생의 궁극적인 최고선과 행복이, 이성활동에 의해 어떤 것에도 '움직이지 않는 마음의 상 태(apatheia)'를 유지해 나갈 때 실현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생활태도로서 보편적 우주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자연법칙에 따르는 생활을 들었다. 이러한 스토아 학파의 윤리사 상은 그 후 2세기경에 이르러 아우렐리우스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이 사상은 당시 로마의 만민법과 중세 및 근대의 자연법사상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윤리사상은 스토아 학파의 사상과 거의 같은 시기에 에피쿠로스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그는 정신적인 쾌락을 통해서만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 '정신적 평정상태 (ataraxia)’ 를 얻을 수 있으며, 진정한 행복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리고 그는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플라톤의 4주덕을 받아들였다. 그 덕들은 신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주고 행위를 정당하게 판별할 수 있게 해주며 검소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하였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윤리사상은 그 후 근 대 영국 경험론과 공리주의 윤리설에 영향을 미쳤다.
로마의 사상
19세기 독일의 역사가 랑케에 의해 '고대사의 호 수'라고 평가되는 로마는, 그리스를 비롯한 이전 시대의 문화와 사상을 종합하여 전 세계에 보급하는 매개체 역할 을 했다. 그리스인의 독창성을 로마의 조직성으로 엮어 오늘날의 서양문명의 기초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로마문화가 단순한 매개 체 역할에 안주한 것은 아니다. 19세기 독일의 법학자 예링은 “로 마는 무력과 종교와 법률로써 세계를 세 번 통일하였다"고 말했듯이, 로마의 자연법사상과 크리스트교는 중세 이후 서양문명의 중요한 요소로서 성장하게 된다. 로마법은 일개의 시민법에서 시 작하여 지역과 민족을 초월한 항구불변의 자연법에 이르기까지 철학적 발전을 거듭하여, 서양세계에 '자유'와 '평등'의 관념이 싹트게 하였다. 또한 크리스트교는 로마의 국교로 인정되기까지 박해와 순교를 거듭하였으나, 서로마 멸망 후에는 유럽세계의 혼란 속에서 정신적 지도력을 발휘하여 마침내 세계종교로서 교세를 확대하였다. 실제적인 지혜와 활동적 생활을 높이 평가한 로마 인들은 추상 적인 철학적 사고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사상과 과학적 사고에서도 그리스 인을 모방하였고, 주로 현실적 필요에서 그리스 사상을 수용하였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법률과 종교를 기피하려는 젊은 귀족층에게 호소력을 가졌으며, 일반적으로 생활에 대한 물질적 해석을 합리화하였다. 한편 스토아 학파는 낡은 전통적 방식을 존중하는 진지한 로마 인들에게 공감을 느끼게 하였다. 그것은 개인의 자제력과 의 무감 및 정신적 평화를 존중하는 사상이었다. 그리하여 포에니 전쟁기간 중 영향력을 얻기 시작한 로마의 스토아 학파는 제정수립 후 세네카, 아우렐리우스 등과 같은 대표적 사상가들을 배출했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문학가로는 우선 키케로를 들 수 있다. 그는 그리스 정신에 강한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비교적 독창적인 사유를 한 사람으로, 『웅변에 관하여』『공화국론』등 여러 편의 저서를 남겼다. 그중 스토아 철학의 원리에 입각하여 실천윤리의 문제를 다룬 『의무론』은 그의 대표작이며, 그의 문체는 르네상스 휴머 니스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때 네로 황제의 가정교 사를 지낸 세네카는 철학적 에세이와 비극작품을 저술하여 그리 스 3대 비극시인 이후의 최고의 비극작가로 평가되었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평화시대 5현제의 마지막 황제이며, 대표적 스토아 철학자로서 『명상록』을 저술하였다. 역사서술에 있어서는 타키투스가 돋보이는데, 명저 『게르마니아』에서 당시의 로마를 비판하기 위해 '야만인' 들의 활력에 넘치는 건강한 삶을 묘사하고 있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로마공화정에 대한 저자의 향수도 함께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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