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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② 고전 해제

제 1장 <서양문학> 파우스트

by Be_ni 2024. 1. 17.

파우스트

괴테 개인의 성장사일 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의 보배인 이 작품은, 괴테가 젊은 질풍노도시대로부터 출발하여 고전주의를 거 쳐, 만년의 종합적 완성기에 이르는 전 생애를 담고 있다. 즉 괴테 자신의 모든 인생체험과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존재의 방황 · 갈등 · 구원 등의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거대한 노력의 산물로, 이 작품의 메시지는 인간은 자기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방황하지만, 이것을 계속하는 한 결국에는 하늘에 의해 구원된다는 그의 종교관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인간영혼의 구원과 구원을 향한 구도자로서의 괴테의 총체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생애와 작품활동

"여기 인간다운 인간이 있다. 이 말은 나폴레옹이 괴테를 만나고 난 후 한 말이다.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영원한 로맨티스트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신성 로마제국의 추밀원 고문관을 지낸 부친에게서 엄격한 기풍을, 프랑크푸르트 시장 딸인 모친에게서 상상력이 풍부한 예술 가적 성격을 이어받았다. 또한 부유한 상류가정에서 철저한 교육을 받아 뒷날 천재적 대성을 이룰 바탕을 마련하였다. 부모의 나이 차이는 21년이었고, 괴테는 학교가 아닌 아버지한테 교육을 받았다.

15세에 그레첸이라는 소녀와 첫사랑을 경험한 이후 생애 동안 9명의 여성과 애정관계를 가졌다. 라이프치히 대학 법대 재학시절 에는 미술과 문학에 심취하여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겼으며 1768 년 중병에 걸려 고향에 돌아왔다. 요양중 46세의 경건주의적 신앙 이 두터운 노처녀인 클레텐베르크를 만났고, 건강을 회복한 그는 슈트라스부르크로 유학, 학위를 받았다.

여기서 5년 선배인 헤르더를 알게 되어, 민족과 개성을 존중하는 문예관의 영향을 받아 후일 슈트룸 운트 드랑(질풍노도) 문학 운동의 기초가 되었다. 이때 순진한 목사의 딸인 브리온과의 연애는 숱한 새로운 사상의 원천이 되었으나, 괴테는 이상한 강박관념에 쫓겨 연인을 버린다. 이것은 괴테의 가슴에 언제나 지워지지 않고 남아, 그의 시작의 테마가 되었다. 1771 년 변호사 자격증을 얻었고, 이즈음 베츨라르에서 샬로테 부프라는 여인을 알게 되었는데, 이 여인은 이미 약혼자가 있어 이들의 사랑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막을 내린다. 직 후 그의 친구인 빌헬름 예루살렘이 유부녀와의 사랑 끝에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 두 사건을 혼합시켜 주인공 베르테르가 이미 약혼자가 있는 여인을 사랑하다가 실패하고 결국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으로, 전 유럽의 독서계를 강타했다. 이처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도 있지만, 질풍노도라는 문학운동의 시발로서 큰 문학적 의의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75년초 괴테는 셰네만과 사랑하여 약혼까지 했으나, 곧 파혼하 고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초청되어 그곳에 갔는데, 결국 이곳이 그 의 평생 안주지가 되었다. 이곳은 인구 10만에 지나지 않는 소국이었으나, 문화에 대한 의욕과 학문적 분위기가 가득 찬 곳이어 서, 영주의 고문관이 되어 많은 치적을 쌓았다. 이즈음 괴테는 슈 타인이라는 부인을 만난다. 26세의 괴테에 비해 33세인 그녀는 괴테의 누나이자 연인이고, 조언자였다. 이미 7자녀를 둔 그녀와 의 사랑은 지금까지의 어느 사랑과도 달랐으며, 이들의 관계는 괴 테의 질풍노도적인 격정을 진정·순화시켜 질서를 존중하는 고전주의로 향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10년에 걸친 바이마르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이탈리아로 떠났다. 이탈리아는 그에게 고대예술과 고대인의 생활이 어떤 것인가 를 가르쳐주었다. 한편 그는 독일의 동시대인과의 연대를 상실해 갔다. 괴테는 독일에 대해 냉정한 태도로 임했다. 동시대인도 괴 테를 백안시했다. 요컨대 이탈리아는 괴테를 독일로부터 격리시킨 것이다.

1788년에 크리스티아네를 만나 결혼, 자녀도 두고 비로소 가정의 행복을 맛보았다. 1794년부터 시작되는 실러와의 교우관계는 침체했던 그의 창작활동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괴테가 직관적이고 소박한 데 비해, 실러는 사변적이고 의식적이었다. 이처럼 정반대의 기질을 가진 이 두 천재의 협력은 독일문학사에 새로운 고전주의시대를 초래했다. 특히 『파우스트』 (1부)와 빌헬름 마이 스터』는 실러의 격려가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쉴러가 타계했을 때괴테는 “내 존재의 절반을 잃었다"면서 탄식했다.

1816년 아내가 죽었으나, 70이 넘은 괴테는 심신의 쇠약을 보이지 않고 그 정신적 시야는 점점 확대되었다. 74세 때 19세의 꽃다운 처녀 레베초를 만나 열렬히 구애했으나 거절당했는데, 그가 만년에 쓴 「마리엔트바의 비가」는 이 사랑을 표현한 서정시의 백미다.

1829년에 빌헬름 마이스터를 완성했고, 23세 때부터 쓰기 시 작하여 무려 60년이나 걸린 생애 최고의 대작인 『파우스트』 (2부)를 1831년에 완성했다. 그는 혁명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으나, 인류의 진보와 행복에 대해서는 정열을 바쳤으며, 낭만주의의 병적 경향을 싫어하여 고전주의로 전향하였으나, 만년의 작품에는 다분히 낭만적 요소가 실려 있다.

요컨대 괴테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금욕주의자도, 신비주의자도 성인이나 은자도 아니며, 돈 주앙과 같은 호색한도 아니다. 다만 그는 '절제된 감성적 인간'의 지고한 단계에 이르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분투했던 것이다. 

 

파우스트의 전설

「파우스트』는 비극 제1부(1806)와 비극 제2부(1831)로 구성되어 있다. 이 희곡의 소재는 파우스트 전설에서 유래했다. 원래 15세기 말에 살았다는 학자 파우스트의 이야기가 각 지 방에 여러 형태로 전해내려오던 것을 16세기 말 영국의 작가 말 로가 연극화하면서부터 널리 민중극과 인형극으로 퍼졌다. 그는 약간의 과학적 지식을 이용한 마술사로 각지를 유랑한 인간인데, 여기에 갖가지 마술사 전설이 부가되면서 소위 '파우스트 전설'이 등장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모든 학문을 섭렵하고도 만족을 얻을 수 없었던 파우스트는 마력의 힘을 빌어 천지의 신비를 캐고 거부를 얻으며 향락을 맛 보면서 잠시만이라도 신과 필적하는 자가 될 것을 염원하여 악마와 계약을 체결한다. 계약에 따르면 24 년간은 악마가 그에게 봉사하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반대로 파우스트를 악마가 마음대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부터 파우스트는 악마를 따라 여러 곳을 구경하고, 마법의 힘으로 여러가지 향락을 맛보며, 공작의 궁전에 살면서 죽은 사람을 살리고 공작부인을 유혹하기도 하지만, 결국 마음속으로부터의 만족은 얻지 못한다. 회개할 생각이 든 그가 신에게 간구하 려 하였으나, 그때는 벌써 계약기간이 지나 폭풍이 휘몰아치는 밤에 그는 악마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영혼은 지옥에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이상과 같은 전설이 비로소 저서 형식으로 나온 것은 1587년, 괴테의 고향인 프랑크푸르트의 서점인 쉬피스에서 간행한 것인데, 이것이 영역되어 영국의 배우 겸 극작가였던 말로의 눈에 띄어, 포스타스 박사의 비화라는 비극이 탄생하였다. 이것이 영국 여행자에 의해 독일에 역수입되어 민중극과 인형극으로 공연되기에 이른 것이다.

소년시대에 이미 인형극이나 민중극을 통해 파우스트의 전설과 친했던 괴테가 자신도 『파우스트』를 써보기로 결심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주요 등장인물

노력하며 방황하는 인간의 구원을 그린 이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

 

파우스트: 16세기의 전설적인 마술사, 학자, 지칠 줄 모르는 인생 탐구자, 제1부에서는 학문에 대해서 절망을 느끼고 사랑에서 보람을 찾는다. 제2부에서는 미美와 행위의 단계를 체험하고 승천한다.

메피스토펠레스: 파우스트 전설의 악마, 파우스트의 길동무가 되어 그의 영혼을 빼앗으려고 한다. 중간 무렵에 추하게 생긴 마녀 포르키아스가 된다.

바그너: 파우스트의 심부름꾼으로 공부를 하는 심리주의자. 제2 부에서는 대학자가 된다.

마르가레테(그레첸): 청순하고 매력적인 서민의 딸.

헬레네: 그리스의 최고의 미인. 파우스트와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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