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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② 고전 해제

제 1장 <서양문학> 보바리 부인

by Be_ni 2024. 1. 14.

보바리 부인

플로베르의 사실주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한 여인이 이상을 갖는 데서부터 환멸과 절망에 빠지는 과정까지의 내용을 정확한 작품구성과 사실적인 묘사로 표현했다. 낭만적인 환상에 빠진 한 여인이 남편 아닌 남자와 사랑을 하다 결국 파멸하고 자살에 이른다는 진부하기조차 한 소재로, 플로베르는 당대의 부르주아 사회와 그 사회가 양산해낸 인간유형을 일체의 '로마네스크'한 요소를 제거하 고 너무도 '산문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작가 자신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사실주의' 소설의 한 전범典範으로 간주되고 있다.

 

생애와 작품활동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오직 하나뿐인 올바른 낱말'을 고집하며, 동의어를 부정했고, “작가는 작품의 어디에도 존 재하나 어디서도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며 철저한 객관성을 추구했던 작가 플로베르 그는 명의로 소문난 외과의사인 아버지와 낭 만적이고 가족에게 헌신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병원의 부속건물에서 태어나 자란 관계로 인간의 생사문제에 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서 자연현상에 대해서 냉 정하고도 깊이 있는 관찰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10세에 희곡을 창작하기도 했고, 그 희곡으로 친구들과 같이 연극을 하기도 했는데, 이런 방면에 놀라우리만큼 조숙했다. 18세에는 부당하게 퇴교당한 급우를 구제하는 운동에 앞장섰다가, 자신도 퇴학을 당하게 되어 집에서 입학시험공부를 하여 파리대 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그러나 강의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대부분 고향에서 빈둥거리며 그리스어와 라틴어 공부에 열중했다.

24세경에는 신경증 발작으로 법률공부를 완전히 포기하고, 고향에 돌아와 문학에 몰두하면서 문인들과 사교를 넓혀갔다. 25세 때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도중 브뤼겔의 그림 '성앙투안의 유혹'에 감명을 받고 같은 제목의 작품을 쓸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가 정적으로 불행이 닥쳐와 그가 존경했던 아버지가 죽고, 곧이어 사랑하는 여동생이 산욕으로 죽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와 조카 딸 캐롤린과 함께 외부세계를 외면하면서, 고독하고 침울한 가운데 작품 쓰는 데에만 열중하였다. 그런 가운데도 열 살 연상인 여류작가 루이즈 콜레와 깊은 관계를 맺고, 플로베르 자신의 문학관 이 피력된 많은 편지를 교환하기도 했다.

그런데 부친의 제자 중에는 들라마르라는 의학도가 있었다. 그 는 의사면허를 얻은 후 노르망디의 벽촌에서 개업하고, 델핀이라 는 아름답고 재능 있는 아가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런데 그녀는 평범한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껴 애인을 두고 남편 모르 게 돈을 빌려 쓰다 음독자살을 한다. 아내의 부정을 안 들라마르는 비탄 끝에 그녀를 따라 죽는다. 이것은 '들라마르 사건'이라 하여 당시 세상을 시끄럽게 한 사건이었다.

플로베르는 당시 『성 앙투안의 유혹』을 완성하고 친구인 브이에 와 뒤캉에게 작품평을 부탁했는데, 졸작이므로 “불에 던져버려라"라는 평을 받는다. 실망한 플로베르는 뒤캉에게 '들라마르 사건'을 소재로 작품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그는 이 권유를 받아들여 뒤캉과 함께 18개월에 걸쳐 여행을 하면서 점차 낭만과 이념의 세계로부터 현실의 세계로 문을 돌려, 『보바리 부인』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

1851년 여행에서 돌아온 플로베르는 크로아세에 틀어박혀 하루 평균 12시간씩 이 작품에 매달린 끝에 5년 후에 완성을 보았다.

이 소설이 <파리>지에 연재되는 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다가, 1857년 풍속문란과 종교모독 등으로 기소되었다. 결국 승소하였으나 카톨릭 교회에서는 이 책을 금서로 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이 책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렸고, 이 작품으로 그는 프랑 스 리얼리즘의 거장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이어서『성 앙투안의 유혹』의 제2고, 『살람보』 『성 앙투안』의 제3고 등을 완성한다. 1878년 말『부바르와 페퀴셰』의 자료를 보완하기 위해 모파상과 함께 프랑스 북부해안을 여행하고 나서 계속 집필에 들어갔으나, 도중에 뇌일혈로 급사했다.

 

리얼리즘 문학과 플로베르

1830년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서구세계의 지배적인 문예사조는 리얼리즘이었다. 고전주의는 이제 완전히 후퇴하고 로만주의(낭만주의)도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그 기세가 두드러지게 약화되었다. 1870년경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은 한편으로 자연과학의 발전과 철학적 합리주의 경향에 호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짙은 감상주의로 타락한 낭만주의에 반발하였다.

그럼으로 리얼리즘의 특징은 ① 낭만주의의 지나친 감상에 대해 반대했다는 점이다. 낭만주의자들은 인간의 자연적 선과 자연의 신성함을 믿었다. 그들은 현실을 도피하여 과거 속에서, 이국적 배경 속에서, 스스로의 상상 속에서, 아름다움과 위안 그리고 흥분을 찾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정서적 이상에 비추어 생활을 묘사하였다. 그러나 리얼리즘 작가들은 실제로 본 것을 충실하게 묘사하여, 사실을 미화함이 없이 인간의 경험을 가능한 한 정직하게 표현하려 하였다.

② 리얼리즘은 심리문제 또는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작가들은 인간행위의 상충하는 경향들을 상세히 분석하였으며, 환 경의 좌절을 극복하기 위한 개인의 투쟁을 충실하게 묘사하였다. 문학작품은 이와 같은 깊은 사회의식을 가지게 됨으로써 일종의 고발문학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③ 리얼리즘 작가들은 대개 당시의 유행하는 과학이론 내지 철 학이론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일부 작가들은 인간이 환 경과 유전의 희생물이라는 '결정론'의 입장을 취하는가 하면, 다른 일부 작가들은 인간의 본성이 대체로 짐승과 같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동물적 성질을 갖고 있다는 '진화론'에 동조하고 있었다. 또 다른 일부 사람은 사회개혁의 정열에 불타서 산업혁명이 초래한 사회악과 불평등을 규탄하는 작품을 썼다.

이와 같은 리얼리즘 문학의 새로운 징조는 먼저 프랑스에서 나타났다. 특히 발자크, 플로베르, 졸라, 모파상 등은 새로운 문학사 조를 대변하였으며 전 세계적으로 광범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중에서도 리얼리즘의 전통을 정확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가가 플로베르다. 그의 걸작 『보바리 부인』은 인간의 향락에 관한 냉철한 분석으로, 낭만주의적 꿈과 현실과의 괴리를 보여줌으로써, 낭만주의적 생활철학의 부적당함을 비판한 작품이었다. 비록 이 책이 외설적이라고 비난받고 작가가 부도덕한 작품을 발표했다고 공격받았으나, 일부 문학평론가들은 그것을 근대문학상 최대의 소설 중 하나로 손꼽고 있는 것이다.

 

주요 등장인물

사랑의 열정과 성도덕의 타락을 통해 당대 부르주아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엠마: 부농의 딸로 현실을 싫어하고, 몽상세계에서의 사랑 때문에 파멸하는 여인.

샤를 보바리: 엠마의 남편으로 평범한 의사.

레옹: 법률공부를 하기 위해 파리로 떠난 청년으로 엠마의 정부.

로돌프: 유복한 생활을 즐기면서 여인들을 농락하는 호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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