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인간이란 무엇인가?
03. 인간의 충동적 · 이기적 본성(3-3. 프로이트)
그러나 본 절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인간성의 이기적 · 공격적 측면에 대한 과학적 성격의 견해들은 진화론의 등장 이후 인간에 대한 동물적 이해가 증대되면서 급진전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그러한 견해들은 자신들의 과학적 근거들이 갖는 설득력에 힘입어 오늘날에 와서는 인간성에 대한 지배적인 견해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정신분석학적 심리학에 기초하여 인간의 본성을 파헤친 프로이트의 견해는 그러한 견해들 중 학문 전 분야에 걸쳐 가장 폭발력 있는 영향력을 끼친 대표적인 사상이다.
프로이트에게 인간 본성의 가장 본질적인 것은 충동(libido)이다. 흔히 자아고 여겨져 온 것은 현실계의 계속적인 영향에 의해 겉으로 드러난 무의식 속에 있는 충동의 발전적 형태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진적인 발전 과정에서조차 충동 가운데 일부 자질만이 잠재 상태로 변이되어 자아 속에 흡취되는 것이고, 다른 자질은 여전히 본성의 핵심적 요소로서 충동 속에 변함없이 존속하고 있 다. 이렇게 볼 때 종래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는 원리로 알려진 의식적 자아(ego)는 사실 자주적인 행위 주체가 아니라 무의식 내의 본능적인 공격적 충동 욕구도 인 이드(id)와 전통과 관습 · 도덕 및 부모로부터 연원한 내면적 · 무의식적 억압인 초자아(super ego) 사이에서 그것들의 지시에 끌려 다니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무사직 억압 따라서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진 인간 개념 즉 인간이란 합리적 목적을 위하여 성실하게 노력하는 지각 있는 존재라는 오래된 신념은 극히 부분적이고 제한적 인 인간 이해에 불과하다. 의식의 세계가 마음의 세계 전체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물 위에 나타난 빙산의 일각처럼 조그마한 것에 불과하다. 보이지 않는 무의식이 마음의 진짜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한 대의 명분을 따라 행동하는 듯 보이나 그 한층 깊은 동기에는 어떤 동물적인 충동 특히 성적 충동이 자리 잡고 있다. 소위 도덕적이라고 찬양을 받는 행위란 금지된 것을 어기는 것에 대해 가해지는 초자아로부터의 억압과 질책에 대한 무의식적 위장 즉 가장된 행위이다. 즉, 도덕은 칸트가 주장하는 것 같은 선천적 원리에 근원을 둔 것이 아니라 충동적 삶의 욕망과 사회적 조건의 관계 속에서 발달된 사회 형성물로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른바 양심이란 것 역시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억압된 욕망들이 무의식에 살아남았다가 성인이 된 후 의식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저항 심리적 자기 공격성 즉, 죄의식일 뿐이다. 요컨대 인간의 선천적이고 독립적이며 본능적인 기질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근원적인 자기 보존적 특성 즉 공격적 성향뿐이다.
인간의 본질을 의식적 자아가 아닌 무의식적 충동에서 찾은 이와 같은 프로이트의 인간관은 전통적인 이성주의적 인간관의 측면에서는 실로 충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이성에 기초한 고전적인 윤리 및 정치 · 역사 사상 모두를 뿌리째 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사상은 인간의 행위 동기 및 병리적 심리 특성을 진단하고 해명하는 심리학 이론으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과 사회관계에 대한 설명 이론으로서 특히 이성과 권력, 전통과 도덕의 이름으로 개인과 사회에 가해진 억압 구조를 폭로하고 해명하는 철학적 사회사상으로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으면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물론 그가 인간의 행위 동기의 본질로서 주목한 성적 리비도는 아들러(A. Adler)를 비롯한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인간 의지의 능동성을 간과한 채 지나치게 병적 특성에 집착한 결과로 비판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이른바 정신분석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자본주의적 경쟁 사회에서 인간과 사회 · 역사를 이해하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적 · 심리학적 조류의 하나로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