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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해하기

인간의 이해(13)

by Be_ni 2023. 10. 4.

2장 성과 사랑의 철학

04. 페미니즘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여성의 권리 회복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담론은 갈래가 여럿이지만 대체로 이 명제를 공통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명제는 여성에게 임신과 출산의 능력이 있고 남성에게 평균적으로 여성보다 강한 근육이 있다는 생물학적 차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 명제가 주장하는 것은 생물학적 성과 다른 사회적 성이 있고 생물학적 성 차이가 사회적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페미니즘, 해방, We Can Do It!

생물학적 성은 보통 '섹스(sex)'라 부르고 사회적 성은 '젠더(gender)"라 부른다. 많은 사람이 입버릇처럼 쓰는 '남성답다'는 말은 '자신감', '책임감', '용기' 등을 상징하고 '여성답다'는 말은 '아름다움', '의존성', '다소곳함' 등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런 항목을 가진 성은 생물학적 섹스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 성이며 시대에 따라 변하는 젠더다.

 

남성다움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남성은 농경 사회에서는 훌륭한 농부이자 강인한 전사가 되어야 하지만, 산업 사회에서는 상품의 생산과 가족의 부양을 책임지는 성실한 일꾼이 되어야 한다. 여성다움에 속하는 수동적 성격과 의존적 태도도 관습과 교육의 산물이다. 여성은 임신하고 출산하는 생식 능력 때문에 고대 농경 시대부터 생산 노동에 제한적으로만 참여했다. 이런 상황은 여성이 남성에게 의존하고 가정과 사회에서 성에 따른 각종 차별이 자연스럽다는 믿음을 낳았다. 여성은 사춘기, 결혼, 어머니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 몸을 열등하게 받아들이고 남성에게 의존하는 수동적 역할에 만족하도록 길든다.

 

가부장제는 원시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넘어오면서 출현했다. 원시 수렵 채집 사회에서 노동, 출산, 교육은 모두 성별 분업 없이 공동체 전체의 일에 속했다. 그러나 농경 사회에서 힘든 농사는 남성이 하고 집안일과 아이 키우는 일은 여성이 나누어 하면서 생산 활동에서 주도권을 쥔 남성을 중심으로 가부장제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남성이 부양자가 되면서 여성의 노동은 부양자를 시중드는 노동으로 변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가족 임금 체계가 성립한 것은 가부장제를 더욱 강화했다. 가족 임금 체계는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번 돈으로 온 가족이 먹고 사는 것이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일터에 나가야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생산력이 발달하자 남성 노동자는 자기 노동만으로 가족을 부양하는데 충분한 임금을 요구했다. 그러자 남편을 보조하고 자식을 기르는 현모양처가 여성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굳어졌다.

 

여성과 남성의 평등은 어떻게 이룩할 수 있을까? 대답은 페미니즘의 갈래에 따라 다양하지만 원칙 면에서는 두 가지 길이 가능하다. 하나는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해소하는 길이고, 또 하나는 이 차이를 제대로 살리는 길이다. 여성과 남성의 평등은 둘 다 호모 사피엔스라 보고 차이를 해소하는데 기초할 수도 있고 생물학적 성 차이를 악용하지 않고 존중하는데서 출발할 수도 있다.

 

두 길은 원칙이 다르기 때문에 구체적 해결책도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의 취업 문제에 대해 차이를 해소하자는 페미니즘은 군대 장교나 항공기 조종사처럼 금남의 영역을 무너뜨리는 일을 우선으로 보겠지만, 차이를 살리자는 페미니즘은 교사나 프로그래머처럼 세심한 작업이 필요한 영역을 확보하는 일을 우선으로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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