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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해하기

인간의 이해(10)

by Be_ni 2023. 10. 1.

2장 성과 사랑의 철학

02. 사랑

참사랑은 무엇일까?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 (Saint-Exupéry)는 <어린 왕자 (Le Petit Prince)》에서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쪽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 <타이타닉(Titanic)의 유명한 장면처럼 함께 뱃머리에서 두 팔을 벌리고 아슬아슬하게 바닷바람을 쐬자는 뜻일까?

타이타닉&#44; 뱃머리&#44; 바닷바람

《향연 (Symposion)》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n)이 남긴 30여 개의 대화편 가운데 하나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대부분 스승 소크라테스(Socrates)가 제자, 친구, 적대자 등과 어떤 주제를 놓고 벌인 대화를 기록한 것이다. 《향연》은 '에로스에 관해' 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에로스는 사랑의 신을 뜻하기도 하고 사랑을 뜻하기도 한다. 이 대화편은 비극 작가 아가톤(Agathon)이 연극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축하하러 모인 사람들이 에로스에 관해 돌아가며 한 마디씩 찬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이야기들 속에 플라토닉 러브의 참뜻이 들어 있다.

 

남성을 여성보다 우월하게 여긴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에서는 남자 동성애를 이성애보다 고귀하게 평가하고, 나이 든 남자 시민과 어린 소년이 몸과 마음을 교류하는 소년애 풍속이 퍼져 있었다. 몸의 교류는 섹스도 포함한다. 《향연》 에서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이구동성으로 찬양하는 에로스가 바로 소년애다.

 

《향연》에서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는 황당한 신화를 소개하 면서 소년애를 정당화한다. 처음에 사람은 성이 두 가지가 아니라 남성, 여성, 남녀성 세 가지였고, 모두 요즘과 달리 팔 네 개, 다리 네 개, 얼굴 두 개, 귀 네 개, 성기 두 개씩 가지고 있었다. 남성은 성기가 둘 다 남자 것이고 여성은 둘 다 여자 것이며 남녀성은 하나씩이다. 이런 이상한 몸을 가진 사람들은 힘이 세고 야심도 대단해 신들을 공격하려 했다. 신들이 분노했고 제우스는 모든 사람을 반쪽으로 쪼개는 벌을 내렸다.

 

오늘날 모든 사람은 온전하지 못한 반쪽이며 그래서 나머지 반쪽을 그리워하고 다시 한 몸이 되려 한다. 본래 남성인 사람은 남성 반쪽을 그리워하고 본래 여성인 사람은 여성 반쪽을 그리워하며 본래 남녀성인 사람은 반대 성 반쪽을 그리워한다. 따라서 소년애도 온전해지려는 욕망에서 비롯한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 아리스토파네스의 결론이다. 이 신화에서 유래했는지 모르지만 요즘도 더러 사랑을 반쪽 찾기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분신이라 부른다.

 

그러나 소년애는 몸의 교류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다. 마음의 교류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차례가 되자 에로스에 관해 전매 특허인 대화 형식으로 말하는데 요점은 이렇다. 뭔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 대상을 욕구하는 것이고, 욕구하는 것은 지금 그 대상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돈을 사랑하는 것은 돈을 욕구하는 것이고 이는 지금 돈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물론 돈 많은 사람이 돈을 더 많이 원하는 경우도 흔하지만 이는 자기가 원하는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뜻 이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사랑은 뭔가 부족한 것을 깨닫고 그것을 원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부족하다고 깨닫고 원하는 대상 중에 소크라테스가 중요하게 꼽은 것이 지혜다. 용기, 절제 같은 덕도 중요한 대상이다. 그런데 그리스 말은 '지혜 (sophia)'와 '사랑하다(philos)'를 더하면 '철학 (philosophia)'이 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에게 진정한 사랑은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함께 추구하는 지혜 사랑, 곧 철학을 포함해야 한다. 플라토닉 러브란 이처럼 동성애건 이성애건 서로 마음을 교류하며 지혜를 추구하는 사랑이다.

 

고대 그리스의 소년애의 경우도 섹스를 나누지만 함께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랑하는 나이 든 남자와 어린 남자는 공동 목표인 지혜를 함께 바라 본다. 따라서 서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함께 같은 쪽을 바라보는 사랑도 플라토닉 러브의 현대판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여우와 어린 왕자가 만나는 대목이 나온다.

 

소행성에서 기르던 장미가 지구 위에 수천 송이나 있는 것을 보고 슬퍼하는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한 가지 비밀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단번에 가르쳐 줄 수는 없으니까 길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길들이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첫날에는 멀리 떨어져 있다가 매일 조금씩 가까이 오고 그다음에는 시간 약속까지 하고 오라고 말한다. 그러면 약속한 시간이 되기 전부터 여우가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하면서, 이렇듯 길들이는 과정을 마친 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가르쳐 준 비밀은 소행성의 장미가 지구의 장미와 다르다는 것이다. 소행성의 장미는 어린 왕자가 물 주고 벌레 잡아 주면서 길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에서 길들이기가 플라토닉 러브에서는 '대화'다. 고대 그리스에서 나이 든 남자와 소년 사이에 소년애 관계가 맺어지면 나이 든 남자는 소년에게 자기 지혜를 모두 전수해야 하고 없으면 함께 찾아야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대화다. '향연'의 그리스 말은 심포지온(symposion)'이며 심포지온은 '함께 마신다'는 뜻이다. 그러나 '향연'은 그냥 함께 먹고 마시며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화하면서 지혜를 나누고 함께 찾는 과정이다.

 

플라토닉 러브나 어린 왕자>의 길들이기는 서로 모습을 바꾸고 조율하는 사랑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많은 연인은 오랫동안 만나고 같이 살고 티격태격하면서 생각과 행동을 조금씩 맞추어 간다. 심지어 많은 부부가 얼굴이 닮았다는 착각 섞인 말도 듣는다. 서로 함께 같은 쪽을 본다는 것은 <타이타닉>의 한 장면처럼 같은 쪽을 바라보고 서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주 보며 길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간을 들여 대화하면서 지혜를 나누고 함께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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