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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해하기

인간의 이해(12)

by Be_ni 2023. 10. 3.

2장 성과 사랑의 철학

03. 섹스(3-2. 사랑 없는 섹스)

섹스에 대한 전통 관념은 '결혼 안에서 섹스(sex within marriage)'다. 그러나 많은 젊은 세대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결혼의 울타리에 얽매이지 않고 성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랑 있는 섹스(sex with love)' 를 주장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은 첫눈에 번개가 일어나는 열정적 사랑이나 영혼의 빈자리를 메우는 낭만적 사랑을 꿈꾼다. 그러나 다수의 생각과 행동이 반드시 한 시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열정과 낭만도 시시하게 여기는 사랑과 섹스가 있다. '사랑 없는 섹스 (sex without love)'이다. 이런 사랑과 섹스는 과거에 보기 힘든 모습이고 따라서 현대를 대표할 만한 후보다. 사랑 없는 섹스도 해방의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사랑, 영혼의 빈자리, 해방

사랑 없는 섹스라면 나이 든 여성은 남편의 배설이나 자식을 얻기 위해 소극적으로 치르는 의무 방어전을 연상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 없는 섹스는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감정을 배제하는 섹스를 가리킨다. 사랑 없는 섹스는 섹스에 사랑의 감정을 섞지 않는다. 감정을 섞는 것이 귀찮고 피곤하기 때문이다. 내가 남과 섹스할 때 감정을 섞으면 기쁘고 뿌듯할 수도 있지만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다. 감정을 섞어 자존심이 상하느니 차라리 감정을 배제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사랑 없는 섹스는 아무 감정도 없는 섹스가 아니다. 이런 섹스는 좀 더 깊이 보면 내 몸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다. 내 몸의 쾌감이 사랑 없는 섹스의 목표다. 남의 감정, 남의 몸, 남에 대한 내 감정은 포기하더라도 내 몸에 대한 내 감정만은 포기할 수 없다. 내 몸에 대한 자기 도취적 사랑, 곧 내 몸에 대한 나르시시즘(narcissism)이 사랑 없는 섹스의 정체다.

 

왜 섹스의 첨단을 달리는 사랑 없는 섹스가 내 몸에 대한 나르시시즘을 요구 할까?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rd)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소비 사회다. 보드리야르는 소비 사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호가 몸이라고 주장한다. 소비 사회에서 몸은 경제 면으로 사유 재산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 따라서 개인은 자기 몸을 재산으로 관리하고 조작하고 투자한다. 또 몸은 심리 면에서 사회 지위를 표시하는 중요한 기호이므로 자기 도취적 숭배의 대상이 된다. 소비 사 회에서 내 몸에 대한 나르시시즘이 없는 사람은 손가락질을 받는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열심히 하고 다이어트 클리닉에라도 다녀 마르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 해야 한다. 가장 아름다운 소비 기호로서 나르시시즘의 대상이 된 몸은 이윤을 낳는다. 소비 사회에서 많은 상품은 고객을 얻기 위해 이 시대 최고의 유행 의상인 알몸 을 이용한다. 사랑 없는 섹스, 곧 내 몸에 대한 나르시시즘만 있는 섹스는 몸을 가장 아름다운 기호로 소비하는 사회가 요구한다.

 

보드리야르가 사랑 없는 섹스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보드리야르가 보기에 이런 섹스와 사랑은 바타이유와 반대로 사람의 사물화 현상이다. 소비 사회에서 사랑 없는 섹스는 나든 남이든 살아 있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죽은 사물, 즉 기호로 취급하는 현상이다.

 

기호는 표시와 의미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둥글게 만든 기호는 둥근 모양이라는 표시와 '좋다' 또는 '잘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기호학자들은 기호의 표시를 기표'라 하고 기호의 의미를 '기의'라 한다. 그런데 기호는 손짓, 몸짓, 글자, 그림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을 가리킬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 목소리도 크기, 높낮이, 억양 같은 표시와 그 소리에 담긴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현대 소비 사회에는 기호가 난무하고 있다. 기표와 기의를 구분하는 기호학의 용법을 도입하면 '기의 없는 기표'가 난무하고 있다. 현대인은 많은 사람과 만나면서도 외롭고 많은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의사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많은 사람과 만나지만 외로운 까닭은 그들이 내게 의미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많은 말이 오가지만 의사 소통이 잘되지 않는 까닭은 그 말들이 내게 의미 없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기호가 가진 두 요소, 기표와 기의 중 기의는 없고 기표만 난무하기 때문이다. 내게 의미 없는 사람이나 말은 기의 없는 기표다. 많은 사람과 만나 수다를 떨더라도 독백하는 것과 마찬 가지다.

 

섹스와 사랑을 기호, 더 정확하게 기의 없는 기표로 소비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섹스와 사랑에서 뭔가 진지한 의미를 따지는 것을 싫어하는 태도다. 보드리야르는 소비 사회에서 섹스와 사랑은 그 설명을 따지면 기호로 소비한다는 특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바타유처럼 섹스와 사랑이 삶의 충동의 표현이니 금기의 위반이니 하고 의미를 따지는 것도 이미 낡은 견해다. 사랑 없는 섹스를 즐기는 사람에게 사랑과 섹스는 본질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소비하는 것이다. 섹스와 사랑을 기호로 소비하는 것은 섹스와 사랑의 '의미 죽이기'다. 과연 현대 사회에서 섹스와 사랑의 의미는 이렇게 죽여 버려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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