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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해하기

삶의 문제 & 철학(5)

by Be_ni 2023. 9. 16.

06. 철학의 비판적 성격

그러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제시된 이른바 수많은 진리가 인간의 삶의 보존과 향상을 담보하기는커녕 오히려 인간을 미혹스런 질곡에 빠뜨린 경우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발견한다. 더더욱 심각한 것은 이른바 종교적 믿음이 원천적으로 이성을 넘어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종교적 진리와 이른바 광신적 미망을 원리적으로 구분하기란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기독교도 성립 당시에는 일부 사람들만의 사교적 신앙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훗날 고등 종교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도 그들이 표방한 믿음에 대한 객관적 평가 기준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현세에서의 전개 과정에서 드러난 역사적 사실이 그렇게 말해 줄 뿐이다.

이것은 이제 인간 삶의 과정에서 주어지는 수많은 불확실한 문제 상황에 대하여 추측, 믿음, 감정을 통한 대응에 앞서, 객관적 인식과 이성적 분별을 가능케하는 비판적 인식을 통한 철학적 대응이 왜 기본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이때 비판적 인식이란 단순히 사물과 사태를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해 냉철하게 지적으로 따져 묻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철학은 근본적으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다. 이런 점에서 종교적 대응 방식과 비교하여 철학적 대응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고 미완결적이며 신중하다. 그러나 우리가 지나온 삶과 역사를 문제에 대한 도전과 응전의 관점에서 되돌아보면 그 무엇보다도 냉철한 이성과 보편타당한 방식에 기초한 철학적 대응이 얼마나 삶의 문제 해결에서 불가결하고도 신뢰할 만한 가장 견고한 중심 기반이 되어 왔는가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철학은 바로 이와 같은 문제 상황에 대한 인간의 지적 대응에서 이성의 역할에 대한 확고하고도 분명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요컨대 종교는 삶의 가치를 믿음을 통해 완성하고자 하나, 철학은 그것을 냉철한 지성으로 탐구하고 인식하며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다.

 

철학자

 

그렇다고 철학이 종교에 반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는 신앙을 통해 문제의 종결을 추구하지만, 철학은 다만 인간 이성의 한계 내에서 이성의 눈으로 인간의 문제 상황을 구성하는 제반 사물과 사태를 냉철하게 직시하는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직시의 극단에서 어떤 철학은 종교적 비약으로 결단을 감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대응의 시작일 뿐 철학 자체의 의미를 무화시키지 않는다. 철학은 학문의 차원에서건 삶의 지혜의 차원에서건 확실성을 향한 비약이라기보다는 불확실성에 대한 줄기찬 대결이자 끝없이 되묻고 되묻는 반성적 비판 그리고 형성의 작업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플라톤 시대에 토론되었던 것과 똑같은 문제가 오늘날에도 중요한 철학적 문제로 토론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완전히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문제조차 철학사에 다시 나타나고 토론되며 다시 답해진다. 이런 측면에서 슐리크(M. Schlick)는 "항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는 것이 철학자가 하는 일의 특징이라고까지 말한다. 이른바 시대와 장소를 관통하는 보편적 진리를 추구한다는 철학 자체가 역설적으로 철학사라는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 그 전개를 계속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이 때문에 야스퍼스(K. Jaspers)는 철학이란 언제나 "길 위에 있는 것(Sein auf dem Wege)" 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실러(F. Schiller) 또한 "영원히 만족할 만한 철학 체계는 없다 하더라도 철학적 욕구는 영원히 지속할 것" 이라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진정 철학사란 불후, 불멸의 진리라는 철학의 목표에 미달한 실패의 문서들이 쌓여 있는 서고가 아니라 그 시대의 문제를 그 시대의 조건에서 그 시대의 지성들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고통스럽게 육박하여 이루어 낸 살아 있는 그림들이 진열된 '지성의 회랑'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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