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철학의 총체성과 형이상학적 지향
앞 선 글에서의 관점은 철학을 주로 개별과학과의 관계 속에서 해명하고자 한 것으로서, 개별과학이 발달한 오늘날 과연 철학은 필요할까라는 의문에 대한 소극적 차원의 설명이라 하겠다. 총체적 관점의 획득으로 표정되어 온 철학의 고전적 특성은 오히려 철학의 정체성의 위기와 관련한 오늘날의 영미 분석철학적 시각에 구애 없이 인간의 본질 그 자체로부터 연원하는 보다 적극적이고도 고유한 위상과 필연적인 운명을 갖는다.
무엇보다도 철학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물과 사태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의미를 간취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원적이고도 근본적인 지적 욕망 그 자체를 반영한다. 다시 말해, 모든 것에 대한 모든 의문을 넘어서서 그 모든 것에 관한 총제적, 통일적 인식에 육박하고자 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끝없는 그 욕망이야말로, 왜 철학이 총체성과 필연적으로 관계되는지를 보여 주는 근거이자 철학함을 이끌어 가는 본원적 원동력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철학적 갈구는 우리로 하여금 사물과 사태에 대한 수많은 개별과학적 성과와 그 성과에 대한 다양한 해설을 넘어 그것들을 종합하고 비판해가면서 종국적이고도 필연적으로 우리를 형이상학(metaphysics)으로 다가서게 한다. 즉 고갈되지 않는 인간의 지적 욕망은 철학으로 하여금 사물과 사태의 총체적인 근원과 본질에 대한 형이상학적 물음으로까지 다가서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드는 필연적 근거이다. 다시 말해 형이상학은 철학이 종국적으로 다가설 수밖에 없는 이성적 사유의 극한에서 성립하는 것이자, 그러한 지적 갈구의 극한조차 넘어서고자 하는 마르지 않는 사색의 원천이자 기반이다. 어떠한 종류의 지적 제한도 인간의 철학 정신을 가로막지 못한다. 철학은 하물며 철학의 부정조차도 포섭해 버리는 끝없는 지적 욕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05. 철학과 종교
삶의 문제에 대한 본질적 대응 방식이 지식이고 삶의 문제의 전 영역이 근본적으로 총제적인 내적 연관을 갖는 것이라면, 사물과 사태의 진상(episteme)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실천은 인간에게 숙명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숙명적인 발걸음을 계속해 온 철학적 탐문은 그와 같은 총체적 진상에 도달했는가? 철학의 역사가 존재하고 아직도 철학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진리를 향한 철학의 행보가 아직도 끝나지 않는 계속되는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특히 총체적 관점의 획득이라는 철학의 특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는 형이상학적 탐문조차 철학의 도정을 끝내기는커녕 또 다른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이기 일쑤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들은 때때로 진리란 존재하는 것인지, 그것은 과연 도달할 수 있는 것인지, 혹시 아예 진리란 없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철학의 무의미한 헛수고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의 의문을 품고는 한다.
그러나 삶의 문제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근본적인 해결을 추구하면서도 철학과 전혀 다른 이른바 신앙의 방식으로 확고부동한 답변을 제시하는 또 다른 문화 양태가 있다. 그것은 곧 종교이다. 사실상 종교는 우주와 인간의 근원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저 죽음의 공포 및 소소한 도덕적 자책이 가져다주는 괴로움에 이르기까지 삶의 영역 전반에 관한 근원적이고도 총체적인 답변을 제시해 준다. 이러한 한, 종교나 철학 모두 당면한 문제 상황에 대한 인간의 고유하고도 본질적인 고도의 문화적 대응 양태로서 공통점을 갖는다. 실제로 당면한 삶의 근본적인 문제 상황에 대해 기독교의 예수는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고, 불교의 석가모니 또한 역시 참된 실재, 진리로서 불성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모든 고통과 윤회 전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철학과 종교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이고,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우선 앞의 인용 예에서만 보더라도, 예수와 석가모니가 말하는 진리는 이성적인 숙고를 통해 얻어지는 철학적 진리와는 다른 의미의 진리이다. 그것은 오히려 이성이 좌초하고 합리성이 두절된 지점에서 지정의를 총망라한 저 이성 너머로의 총체적 비약, 이른바 믿음 또는 깨달음을 통해서 얻어지는 진리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성적으로 논증될 수도 없고 보편적으로 설명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종교로 다가서는 이유는 문제 상황 자체를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도, 그렇다고 회피하거나 포기할 수도 없는 인간 삶의 근원적인 특성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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