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문화 산업과 영화
대중 문화는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대중 문화를 보급하는 라디오, 영화, TV 등 대중 매체는 대중의 문화 향유, 사회 갈등의 조절, 민주적 정치 질서의 유지, 지식 수준의 격차 해소, 대중의 다양한 수요 충족 등 순기능의 측면과 대중 취미의 획일화, 사회 갈등의 악화, 대중의 탈정치와, 일탈 행동의 조장, 상업 이윤의 지나친 추구 등 역기능의 측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대중 문화를 생산하는 문화 산업은 20세기 중반 자본주의의 식민지 지배가 한계에 부딪히자 문화를 상품화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동안에서 출현했다.
01. 대중 문화는 저질일까?
문화의 역사에서 20세기는 대중 문화의 시대다. 18세기까지 시, 연극, 그림, 조각, 음악 등을 감상하는 기회는 귀족이 독점했고, 19세기에는 부유한 자본가가 동참했으나 문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소수였다. 그러나 20세기에는 다수의 대중이 처음으로 사람답게 문화 생활을 맛볼 수 있었고, 이를 가능하게 만든 대중 문화의 꽃은 영화와 대중 음악이다.
20세기 들어 대중 문화가 문화의 중심으로 등장한 데는 자본주의의 변신이 크게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자본주의는 군사, 정치, 외교를 통해 식민지를 지배하였다. 그러나 외국 시장을 확보하려는 그와 같은 제국주의 팽창 정책이 제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한계에 이르자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문화를 상업화했다. 따라서 그동안 문화 생활에서 소외된 일반 대중이 문화 상품 시장의 새 소비자로 등장했다.
대중 문화는 말 그대로 대중이 누리는 문화를 뜻하지만, 이 문화를 제작하고 보급하는 매체의 특성으로 규정할 수도 있다. 매체는 책, 전화, 이메일처럼 시간과 공간 면에서 직접 의사 소통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는 간접 의사소통 수단이다. 대중 문화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매체는 라디오, 영화, TV가 대표하는 대중 매체 또는 전파 매체다. 라디오, 영화, TV는 모두 수용자에게 전자기파를 보내 문화 상품을 전달한다. 19세기까지 가장 중요한 의사 소통 매체는 책, 신문 등 인쇄 매체였다. 요즘에는 신문도 하루에 수십만, 수백만 부를 찍을 정도로 다수에게 보급되는 대중 매체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적었고 제작비도 비쌌기 때문에 소수의 지식인만이 접할 수 있었다.
21세기에는 대중 매체를 넘어 인터넷, 휴대폰, 위성 방송 등 새 매체가 정보의 소통을 주도할 것이다. 새 매체는 대중 매체와 다른 여러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대중 매체는 소수의 제작자가 정보를 생산하여 다수의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나 새 매체는 누구나 정보를 소비하면서 동시에 생산할 수 있고, 정보 제공자가 정보 수용자의 반응을 수시로 받을 수 있다. 이메일, 휴대폰 등을 통해 쓰고 말하는 것도 비록 내용이 시시하더라도 정보를 생산하는 행위이다. 새 매체가 창출하는 21세기 문화를 사이버 문화라 부른다. 21세기에는 새 매체를 이용하는 사이버 문화가 대중 문화를 대신할 것이다.
그러나 사이버 문화도 다수의 사람이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 문화의 특성을 이어 받는다. 더욱이 대중 문화와 사이버 문화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대중 문화와 사이버 문화는 모두 환각 체험을 불러일으킨다. 환각 체험은 꿈처럼 외부 자극이 없는데도 이미지를 떠올리는 체험이다.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에게 동화하고 대중 음악 스타에게 열광하며 컴퓨터 오락에 빠져 배고픈 줄 모르는 것은 마치 눈 뜨고 꾸는 꿈처럼 일종의 환각 체험이다. 따라서 영화, 대중 음악과 같은 대중 문화의 특성을 살펴보는 일은 사이버 문화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대중 문화는 대부분 저질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끈질기게 따라다니고 있다. 요즘 대중 문화는 젊은 세대가 영화 배우, 가수, 탤런트 등 연예인을 희망 사항으로 첫손가락에 꼽을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 그러나 연예인의 각종 스캔들은 끊이지 않는다. 젊은 세대조차 이런 희망이 세속적인 벽 앞에서 수없이 좌절하는 것을 목도하게 되면서 대중 문화의 부정적 이미지를 마음속에서 말끔히 지우지 못하고 있다.
대중 문화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정당할까? 대중 문화는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다수가 누리는 문화라는 점에서 보면 긍정적 요소가 있다. 그러나 다수가 누리는 문화라는 사실만으로 대중 문화의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 낼 수 있을까?
대중 문화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중 음악은 고전 음악에 비해 형식이 아주 단조롭다. 고전 음악은 형식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대중 음악은 단조로운 형식으로 청중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오락적 가치를 추구한다.
한편 대중 음악이 오락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해서 곧 저질이라고 할 수도 었다. 고전 음악은 머리로 감상하고 대중 음악은 몸으로 느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머리로 감상하든 몸으로 느끼든 음악은 듣는 이의 감정에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대중 음악이 아무리 단조롭더라도 대중의 감정에 호소력이 없으면 인기를 얻을 수 없듯이, 고전 음악도 현대 청중의 감정 반응을 얻지 못하면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로 머물 수밖에 없다. 대중 음악이 저질이라는 판단은 소수 상층 계급이 배타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고급 감정을 기준으로 다수의 감정을 천박하다고 폄하하는 것일 수도 있다.
도대체 대중 문화는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현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물음에 대답하려면 우선 대중 문화를 보급하는 대중 매체의 특성과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대중 문화는 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문화 산업의 성격도 평가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대중 문화를 대표하는 영화와 대중 음악이 현대인에게 어떤 변화를 낳는지도 분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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