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정보 사회와 사이버 문화
04. 환각 체험
사이버 문화의 한 가지 특징은 환각 체험이다. 환각은 외부 대상의 자극 없이도 어떤 모습이나 소리를 실재하는 것처럼 보고 듣는 체험이다. 환각 체험이라면 마약에 취한 모습만 떠올릴 필요가 없다. 보통 사람이 꾸는 꿈이 대표적인 환각 체험이다. 꿈을 꿀 때는 외부 대상의 자극이 없어도 이미지가 떠오르고 소리가 들린다. 또 접신 전문가인 동서양의 무당은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도 혼이 몸을 떠나 죽은 자의 혼이나 신과 만나는 환각 체험을 할 수 있다. 콘서트에서 스타에게 열광해 공연 내내 펄쩍펄쩍 뛰며 소리를 질러도 피곤한 줄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그 시간 동안 무당과 비슷한 환각 체험을 하고 있다. 컴퓨터 게임에 빠져 오랫동안 밥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 모르는 사람도 환각 체험을 하고 있다.
환각 체험은 사람이 욕망을 충족하는 수단이다. 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 Freud)는 정신과 환자들의 꿈을 분석해 정신 질환을 치료한 임상 자료를 바탕으로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대표작 《꿈의 해석》을 썼다. 그에 따르면 의미 없는 꿈은 없고 모든 꿈에는 어떤 소망 또는 욕망을 성취하는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꿈에 짝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경우 오늘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엉터리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과거나 현재의 어떤 소망을 성취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고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견하는 의미는 포함하고 있지 않다. 또 꿈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대부분 다른 것이 둔감한 이미지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꿈에 짝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은 그 사람으로 둔갑한 어머니를 보고 싶다는 소망을 꿈이라는 환각 체험으로 채워주는 의미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욕망을 반드시 돈, 힘, 이름과 같은 현실적 수단으로 채우라는 법은 없다. 환각 체험과 같은 비현실적 수단도 욕망을 채우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인터넷에서 온갖 게임, 다른 사용자와 글이나 말을 주고받는 채팅을 즐기는 것. 휴대폰으로 의사 소통하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영화, 드라마를 즐기는 것은 모두 밥을 먹고 돈을 버는 것과 달리 비현실적 수단으로 욕망을 채운다는 뜻에서 일종의 환각 체험이다. 사이버 문화는 환각 체험으로 욕망을 채우는 것이 특징이다.
환각 체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이 체험이 창의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창조적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높이 평가 받고 있지만 앞으로 정보 사회대시는 더욱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정보의 생산은 창의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의력은 공식이 없다.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에게 "어떻게 그토록 멋진 아이디어를 얻었느냐?"고 물어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언뜻 떠올랐어!"라고 대답하지 그 아이디어를 떠올린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지 못한다.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는 과정은 대부분 비약을 포함한다. 정신이 이런 비약을 수행하려면 각성 체험에만 의존할 수 없고 환각 체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예를 눈이 꿈에 본 장면이 고심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
환각 체험은 무의식에서 비롯한다. 무의식은 좁게 보면 근친 상간처럼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욕망을 억압하는 메커니즘이지만, 넓게 보면 정신이 생각이나 행동을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리지 않고 자동으로 처리하는 버커니즘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손, 눈, 머리의 움직임은 조금만 익숙해지면 일일이 의식하지 않고도 이루어진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손과 발의 움직임과 눈, 얼 굴, 팔다리의 자세도 초보가 아니라면 마찬가지다. 또 의식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은 모두 넓은 뜻에서 의식할 수 없는 자동 처리 과정을 바탕으로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글을 읽고 있다면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눈동자가 움직이고 뇌가 해독하는 등 자동 처리 과정이 의식되지 않은 채 이루어지면서 나의 글 읽기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적 아이디어도 우리가 의식할 수 있게 떠오르기 전에는 무의식의 처리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창조적 아이디어를 얻는 능력을 기르려면 무의식과 환각 체험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환각 체험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사이버 공간의 체험이 무의식을 자극해 정신 능력을 확장하므로 새 문화를 창조하는 중요한 원천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정신은 현실에서 몸이 지닌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사이버 공간은 기술의 뒷받침만 있으면 원칙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성립하는 문화는 몸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정신 능력을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환각 체험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이 체험이 사람의 마음을 확장하기보다 몸과 마음을 분열시키고 마음도 여러 개로 분열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현실 세계에서 고통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데자신에 대한 앎 곧 자의식이 바탕을 이룬다. 그리고 사람의 자의식에 는 내 몸과 마음이 통일되어 있다는 생각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만일 몸이 마음에서 분열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누구든 자기 몸을 찾고 싶을 것이고 세상은 온통 제 몸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환각 체험이 몸의 한계를 정신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달리 보면 몸과 마음의 통일성을 깨뜨린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현실 세계 속에서 통일 된 몸과 마음을 지니고 생활하지만, 예를 들어 사이버 공간에서 게임을 할 때 설사 무력하기 그지없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마음이 통신망을 통해 몸에서 빠져나와 인터넷 세상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사랑을 얻을 수도 있고 죽었다 살아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몸과 마음의 분열은 견디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사이버 공간에 비해 현실 공간에서 무기력한 사람의 경우, 그와 같은 이중 생활을 견디지 못해 더욱 사이버 공간에만 빠져들어 현실 공간에서는 폐인처럼 살 수도 있다. 또 사이버 공간 안에서 한 사람이 여러 종류의 사용자 이름, ID를 가지고 있다 보면 다양한 경험을 할 수도 있지만, 마음이 여러 개로 분열되어 혼란스러운 경험을 할 수도 있다. 환각 체험은 몸과 마음, 마음과 마음의 통일성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자의식의 눈으로 보면 방해꾼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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