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인간이란 무엇인가?
02. 인간의 합리적 · 사회적 본성(2-1. 고전 고대 사상)
인간에 대한 견해들은 시대나 장소 그리고 입장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들어 온 인간에 대한 일반적이고도 고전적인 명제를 꼽으라면 다름 아닌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은 이른바 전통 적인 인간관 즉 합리적 · 이성적 인간관을 단적으로 대변해 왔다. 합리적 · 이성적 인간관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충동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이다. 인간은 이성에 따라 사는 삶이 행복하고 선한 삶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인간이 사회 생활은 물론 도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도 다 그런 까닭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른바 고전적인 고대 사상 대부분은 인간에 대한 이와 같은 신념 위에 서 있다. 서양사상의 뿌리라고 하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Platon) 사상이나 동양사상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고대 선진 유가의 공자 맹자 사상은 그와 같은 인간관의 고전적인 뿌리로서 상당한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들은 우선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지 않는다. 자연은 조화와 질서를 갖추고 있는 영원한 것이며, 인간은 그러한 자연의 일부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연의 조화와 질서의 원리가 다름 아닌 도(道)이자 이성(nous)이다. 따라서 우주와 자연의 원리에 일치하는 삶이 가장 행복한 것이고 선한 삶이며,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내 안에 존재한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이 천도의 원리 라면, 인의예지(仁義禮智)는 그것에 상응하는 인간의 도리이며 (元亨利貞 天道之常 仁義禮智 人性之綱), 우주를 조화로운 코스모스로 만든 우주 영혼 데미우르고스 (Demiourgos)는 내 영혼(Psychē)의 본(paradeigma)이다. 특히 천성에서 부여받은 본성으로서 인(仁)은 본래 씨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장차 터져서 나무로 자라고 개화할 가능성을 내함(內)하고 있는 것이며, 인간은 이미 이성에 따라 욕망 (epithymia)을 다스리며 살아갈 수 있는 절제 능력(sophrosynā)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개인이나 사회나 그와 같이 천성에 일치하는 본성에 따라 조화와 질서를 갖춘 모습이 군자이자 정의로운(dikaios) 사람이요, 덕이 지배하는 바른 사회이자 바른 국가다.
이러한 인간의 선성은 동양의 대승불교에서 극대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불교는 모든 인간이 원대하고도 지고한 참된 실재이자 자연적 선성으로서 불성을 갖고 있으며 누구나 다 자기의 힘으로 그 불성을 깨달아(自淨其意)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또한 플라톤의 전통을 이어받아 행복 (eudaimonia)이 다름 아닌 인간의 기능 중 가장 자연적 본성에 가까운 이성의 기능을 잘 발휘하는 것이고 그 기능의 습관 적 발휘 능력이 곧 덕(aretā)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이성주의적 전통은 서양에서 스토아 (Stoa) 철학에 이르러 더더욱 철저 해져서 자연 자체를 로고스(logos)와 일치시켜 자연학은 동시에 윤리학으로서, 공히 이성에 기초한 삶의 태도의 확립과 지혜의 도달을 목표로 하였다. 곧 자연의 로고스는 인생의 로고스이며, 그에 따라 인생의 목적은 자연의 로고스라는 지(知)를 갖는 것이자 그 지에 따라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곧 부동심(不動 L:apatheia)의 경지이다.
물론 이와 같은 고전적 고대 사상 즉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그리스적 인간관이나 고대 선진 유가의 인간관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인간 일반을 두루 포함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인간 일반에 대한 이해로서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고대의 철저한 신분 사회에서 노예는 인간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마소와 같은 존재였고, 특히 플라톤은 비록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 두기는 했을지라도 기본적으로 인간 종의 선천적 차별성에 기초한 우생학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다. 특히 인류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지 수 만 년 이래 거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남성보다 열등한 인간으로 너무도 당연시 여겨져 왔다. 예컨대 20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는 사실은, 인간으로서 여성이 얼마나 오랫동안 열등한 존재로 여겨져 왔는가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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