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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① 동 · 서양사상의 흐름과 고전

제 1장 서양사상의 흐름과 고전(7)

by Be_ni 2023. 12. 28.

사회계약설과 계몽사상

경험론과 합리론은 대개 합리적인 개 인만을 문제삼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에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사회계약설을 토대로 한 근대시 민사상이 대두되었다. 17,8세기에 나타난 계몽주의 사상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이는 근대 시민혁명의 사상적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홉스는 17세기 과학혁명의 정신을 그의 사상 속에 잘 반영시켰다. 근대시민사상에 사회계약설을 도입한 그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를 극복하고 모두의 생명보존을 위한 평화상태를 창출하기 위해 국가를 성립시킨다고 생각했다. 홉스는 이러한 진리관 · 인간관을 토대로 하여 사회계약설이라는 근대시민윤리를 도출해냈다. 그는 사회구성원들이 투쟁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자연상 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공공이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합의나 계 약에 의한 규범을 만들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홉스의 사상은 그의 『리바이어던』에 잘 나타나 있다. 명예혁명을 전후해 살았던 로크는 영국의 경험론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키고, 시민혁명의 정당성을 옹호하기 위해 『정부론』을 저술했다. 로크는 이 책에서 정치사회의 성립이 각자의 생명. 자 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개인들의 사회계약에 기초한다는 점을 밝히고, 법치국가성. 대의제 · 권력분립 · 입법권 우위 · 저항권을 주창하고 있다. 결국 자연상태 및 사회계약을 전제로 한 점에서는 홉스와 같았지만 그 결론은 정반대였다. 또 다른 계몽사상가인 루소는 당 시대의 이성존중의 풍조에 반 대하여 이성보다 감정과 본능을 중시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의 서두에서 "사람은 태어날 때 자유 로우나 현재는 어디서든지 쇠사슬에 매어사는 것을 본다"는 말로 필요악으로서의 사회를 논하였다. 루소는 근본적으로 로크의 사회 계약설에 동의하였으나, 대의제나 다수결에 관해서는 상이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혁명의 성서라 불리며, '자유 · 평등 · 박애'의 표어도 거기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당시 많은 지식인들의 협동작업으로서 혁명 전 프랑스 사 회를 과감하게 비판한 획기적인 업적이 『백과전서』의 발간이다. 디드로를 중심으로 편찬된 이 방대한 사전은, 전통적인 권위와 사회악에 도전하여 계몽사상을 전파하는 매개체가 되었고, 사회진보를 위한 최초의 백과사전이었다. 이 당시 역사학의 발전도 주목할 만한데, 이탈리아 출신의 비코는 『신학문의 원리』에서 역사의 '순환성'을 강조하면서, 역사과학의 확립을 제창했다. 영국의 기번은 이교적 '문명'과 크리스트교 적 '야만'을 비교하면서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저술했다. 18세기의 또 하나의 업적은 과학적 연구방법론을 인간과 사회현 상에도 적용하여, 정치학 · 경제학·인류학 등 사회과학이 주목할 만한 발전을 했다는 것이다. 경제학의 창시자인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옹호하였고, 이탈리아의 법학자 베카리아는 『범죄와 형벌에서 범죄를 사회계약의 위반으로 보고 그 예방수단으로서의 교육 · 형의 신속 등을 주장하였으나, 후에 중대한 오류도 지적되었다. 프랑스의 귀족출신 몽테스키 외는 『법의 정신에서 3권분립을 제창하였다. 근대후기 18,9세기에 전개된 사상으로는 칸트를 중심으로 한 독일의 관념론과 벤담, 밀을 중심으로 한 영국의 공리주의, 그리고 콩트를 중심으로 한 실증주의를 들 수 있다.

 

독일 관념론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주의를 잘 조화하면서 과학혁명의 성과를 철학적 사고에 적절히 편입시킨 인물은 근대 비판철학의 창시자라 할 칸트였다. 18세기 계몽사상의 마지막 대변자이며, 동시에 19세기 낭만주의 철학을 함께 종합한 그는 과학의 합리성, 인류를 향한 인도주의적 관심 등 을 자신의 사상 속에 심화시켰고, 그의 주저 『순수이성비판』을 통 해 철학적 사유의 발전에 새로운 장을 마련했으나 비판이 일자, 자신의 저작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제거하기 위해, 이를 재구성하여 새로 쓴 저작이 『형이상학 서설』이다. 독일의 관념론은 그 후 피히테, 셀링으로 계승되어 헤겔에 의해 절정을 이룬다. 헤겔은 개인의 인격과 자율적 동기를 중요시하는 칸트와는 달리 개인과 국가성원 전체의 역사적, 사회적 현실속에서 드러나 있는 윤리를 밝히고자 하였다. 그는 개인의 자유와 사 회의 자유가 함께 실현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공동체를 인륜人倫(Sittlichkeit)이라고 정의했는데, 이런 공동체는 절대정신이 정립 (These), 반정립(Antithese), 종합 (Synthese)의 단계를 거쳐 변증법적 원리에 의해 가족에서부터 시 작해서 시민사회를 거쳐 국가에 이르러 완성된다고 하였다. 그의 주저 『역사철학강의』에서 헤겔은 인간 개개인의 생각이 발전하는 것처럼 인간정신의 구체적 구현인 역사도 자유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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