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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② 고전 해제

제 1장 <서양문학> 오이디푸스 왕(3)

by Be_ni 2024. 1. 5.

감상 및 문학사적 의의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과 과실에 의해서 파멸하고 마는데, 비록 인간적인 결함을 갖고 있긴 하나, 대체로 영웅적이고 고상한 동기에 의하여 움직인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소포클레스는 ‘이상적'인 인간을, 에우리피데스는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그린다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가 그렇게 말한 까닭도 필경 이런 데 있을 것이다.

소포클레스 극의 대화들은 단순하면서도 품위가 있어 그의 이상주의적 주인공들의 성격에 적합하다고 할 것이다. 그의 작품 중에 나오는 서정적 부분들은 아이스킬로스의 그것들만큼 극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매우 우아하고 장엄한 편이다.

서양문학의 대표적인 분석극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친부 살해와 어머니와의 결혼이라는 극의 중요한 사건들은 극이 시작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이고, 극 자체는 단순히 '비극적 분석'을 보여 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적 분석은 극의 서두에서 인자한 통치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던 오이디푸스가 거리에서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과 동일인이고, 오이디푸스가 아내라고 믿었던 이오카스테가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이고, 생부가 살해되던 현장의 유일한 생존자가 오이디푸스를 갖다 버린 인물이며, 선왕의 살인범을 찾아내겠다는 오이디푸스의 성실한 노력이 오히려 그를 파국으로 이끄는 것과 같은 '비극적 아이러니'를 통하여 관중이나 독자를 숨막히게 하고, 짧은 시간에 극적 긴장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집중적으로 고조시키는 분석극 특유의 효과를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그의 대표작으로, 아니 그리스 비극 중에서도 가장 고전적인 작품으로 만든 것은, 이러한 치밀한 구성과 원숙한 기법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파멸을 초래할 줄 뻔히 알면서도 이오카스테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신의 신분을 끝까지 밝히겠다는, 오이디푸스의 확고한 의지와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처참한 파멸 속에서도 그가 보여주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일 것이다. 

흔히 그리스 비극을 운명비극이라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결코 운명의 단순한 제물은 아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맹목적인 생존을 위하여 인간의 존엄을 포기할 수만 있었다면 파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파멸할 줄 알면서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진정한 의미의 비극이란 신 또는 외부로부터의 의지와, 인간 또는 내부로부터의 의지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라는 절망적이고 가망 없는 투쟁 속에서도 타협을 거 부하고, 파멸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위대함과 존엄을 지키고 보여주는 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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