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데이아
14년간의 평화에 뒤이은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와중에서 아테네 문명의 와해를 감지하며 쓴 『메데이아』에서, 에우리피데스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감정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남녀 사이의 대립적 관계와 사회제도의 기본적 불안정성을 천착하고 있다. 도시 국가라는 문명세계가 평소에 가까스로 억제할 수 있었던 감정이, 갑자기 격렬한 힘으로 폭발하여 인간과 국가를 파괴하는 모습을 담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은 작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분석이고 반응일 뿐만 아니라, 인류와 인류가 이루어낸 사회구조나 문명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생애와 작품활동
이스킬로스 · 소포클레스와 함께 그리스 3대 비극시인으로 꼽히는 에우리피데스는 천성이 명상적이고 사람을 싫어하 는 고독한 성격이었음이 전기에 나타나 있다. 그러한 성격은 그의 작품이나 조각상에 나타나 있는 침울한 표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두 번 결혼하였으나 상대는 한결같이 음란스런 여자들이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여성을 비꼬는 말이 많다. 때문에 그는 미소지니(여성혐오)의 대명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감히 따르지 못하는 여성심리의 예리한 통찰자였다.
소재는 전통적인 관례에 따라 신화 · 전설에서 빌려왔지만 여러 신과 영웅은 비범한 존재가 아니라, 아무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남녀와 별로 다를 것 없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메데이아』와『히폴리토스』만 해도 등장인물의 정념이 다소 비정상적이라고 할 정도로 격렬하지만 가정 내의 비극에 지나지 않고, 『이온』같은 작품도 본질적으로는 오늘날의 홈드라마와 같다. 여성의 굴절된 심리를 묘사하는 그의 수법은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소포클레스까지의 그리스 비극의 경향, 즉 '신과 영웅을 주제로 하지 않고, 신이 내리는 정의로부터 인간중심의 도덕으로 관심을 옮겼다. 그의 희곡은 문제를 다루는 희곡이며,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표현하였다. 그러나 그는 비판을 하였으나 합리 성을 찾지는 못했다. 그의 작품 중 『바카이의 주인공인 테베왕 펜테우스는 미친 여 자들에게 붙잡혀 사지가 찢기지만, 작가 자신도 마케도니아에서 야밤에 미소년 집을 찾아가던 중 여자들에게 붙잡혀 사지가 찢겨 죽었다고 한다. 총 92편의 작품을 썼다고 하나 현존하는 것은 19편이고, 그중 대표적인 것은 메데이아』 『히폴리토스』 『헤카테』 『헬레네』『트로이의 여인』 『바카이」등이 있다.
그리스 3대 비극시인과 페르시아 전쟁
그리스 3대 비극작가를 페르시아 전쟁과 관련시켜 이들의 작 품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롭다. 아이스킬로스는 이 전 쟁에 병사로서 참전했고, 적군 페르시아에 결정적인 타격을 준 살 라미스 해전의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에서 소년 소포클레스는 소 년 합창단을 지휘하였으며, 에우리피데스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 군이 승리를 쟁취하던 날 태어났다 한다. 이런 이유로 이들 3대 비극시인을 흥륭 · 전성 · 쇠퇴기의 시인으로 보아, 그들의 작품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상징성을 부여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직접 전쟁에 참가하여 신의 섭리와 신의 위대함을 절실하게 체험한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에서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 신의 의지가 인간의 의지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인간보다 오히려 신이 극의 주역이 되고, 인간은 신의 의지의 구현도구로서 결국 신의 의지에 순응하고 귀의한다. 반면, 페르시아 전쟁에 뒤이은 조국 아테네의 가장 영광된 시기와 더불어 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인하여 아테네의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던 불안한 시기를 겪어야 했던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는, 인간의 한계와 더불어 인간의 위대함이 주제를 이루고 있고, 신의 의지보다는 인간의 의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극의 주역이 되고 있다. 반면, 조국의 영광스런 순간을 단지 전해들었을 뿐인 에우리피데스는 전통적인 세계관과 종교관에 회의적이고 사변적인 해석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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