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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전/② 고전 해제

제 1장 <서양문학> 구토

by Be_ni 2024. 1. 16.

구토

노벨 문학상을 거부하며, 끊임없는 ‘사유’와 ‘참여’를 통해 영원 한 자유를 꿈꾸던 마지막 휴머니스트, 사르트르가 쓴 첫 번째 문학작품. 로캉탱이라는 역사 연구가의 일기 형식을 빌어 주인공이 존재의 무상성을 자각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형이상학적 소설은, 사르트르 초기 실존주의의 단초를 보여준다. 철학자 · 극작가 · 시사평론가 등 다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사르트르의 소설가로서의 면모가 가장 완결된 형태로 구현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생애와 작품활동

노벨상 거부,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 마르크시즘과의 동반 및 '결별, 행동하는 지식인, 1980년 사망 시 전 세계의 추모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사르트르는 2차대전 후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을 외쳐, 전 세계적인 영향을 끼친 20세기 최후의 지식인이었다.

사르트르는 해군장교 출신의 부친과 '적도의 성자' 시바이처의 사촌인 어머니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부친이 별세하여 그는 외가에서 자랐는데, 독일어 교사이자 독서 가인 할아버지 아래서 문학적 소양을 키웠다. 3세 때 오른쪽 눈을 거의 실명하여 말년의 불행이 이때 잉태되었다.

19세 때에는 파리의 수재들이 모이는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레이몽, 아롱, 메를로-퐁티 등을 만나게 되고, 23세 때 수석으로 졸업한다. 그러나 교사자격시험에는 낙방하여 1년 후에 수석으로 합격하였는데, 이때 전후 세계여성의 지성의 상징인 시몬드 보 부아르(『제2의 성』의 작가)는 차석으로 합격하여, 이들의 운명적 만남은 시작된다.

세간의 화제를 뿌린 이들의 계약결혼은 애초 2년이었으나 2년 후 재계약 시 사르트르가 장기계약을 요청해, 결국 이들의 동반자적 관계는 80년 사르트르가 별세할 때까지 50년간 지속된다(이들은 일생을 통해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하며 문학적 · 정서적 반려 자가 되었다).

28세에는 베를린에 유학하여 후설의 현상학과 하이데거의 실존 철학을 접하고, 인간존재의 총체적 이해를 가능케 하는 인간학의 정립을 모색했다. 이 시기에 『상상력』『자아의 초월』등을 썼는데 그의 사상적 기초는 이때 형성되었으며, 이후 1938년 존재론적인 우연성의 체험을 그대로 묘사한 듯한 장편소설『구토』를 발표하여, 철학이 뒷받침된 대담한 주제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당시 신이 없는 세계에서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었는데, 그의 초기철 학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존재와 무』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기념비적인 대작이 되었다. 이 책은 철학서 사상 유례가 없는 성공을 거두어 이 책 한 권으로 중학교 교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철학자로서의 위치를 확립하게 되었다.

그는 2차대전 중 소집되어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되었으며, 등과 레지스탕스 조직을 만들어 독일의 나치즘에 저항하기도 하였다. 1945년 잡지 <현대>를 만들어 문학 · 철학은 물론 정치·사회의 모든 문제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사상운동을 전개하여, 그의 존재는 전후 혼란기의 젊은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후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사회참여문학(앙가주망)'을 제창한 시기였다. 당시는 미 · 소의 심한 대립이 세계의 정치상황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는 '제3의 길'을 모색하여 '혁명적 민주연합'이라는 운동에 적극 참가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행동은 거의 소득이 없었다. 그 무렵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던 장편소설 『자유를 위한 길』이 미완성으로 끝난 것은 이 때문이다.

이후 ‘제3의 길'을 완전히 버리고, 긴 논문「공산주의자와 평화」에서 공산주의를 평화의 기수라고 강조한 후, 공산당의 동반자 가 되어 반전 평화운동에 참가하였다.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인해, 그는 함께 일해오던 메를로-퐁티, 카뮈 등과 결별하게 된다. 퐁티는 공산주의 국가가 침략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곤혹스러워한 반면, 사르트르에게 한국전쟁은 제국주의에 맞서는 '사회운동' 일 뿐, 중요한 것은 공산당을 중심으로 좌파 지식인이 뭉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를 평화의 기수로 보았다.

1956년 소련공산당의 스탈린 비판과 헝가리 의거, 그 후의 알제리 독립전쟁 등이 일어날 때마다 자기의 입장을 표명하여 그때마다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알제리 독립전쟁 시 식민지 독립을 지지한 것은, 제3세계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1964년에는 자전적 소설 『말』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노벨상이 서구작가들에 치우쳐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이유로 거부하였다.

말년에는 하나 남았던 왼쪽 시력까지 약해져 독서는 물론 집필도 못했다. 그는 작은 키에 유머 감각으로 남을 잘 웃겼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여 누구에게나 호감을 샀으며, 자기의 신념을 가지고 싸울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 1980년 4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한 사르트르의 죽음은 한 철학자의 죽음도 한 소설가의 죽음도, 한 극작가의 죽음도 아닌, 한 시대를 마감한 최후의 지식인의 죽음이었다.

그가 죽은 해에 그를 추모하는 세미나 · 심포지엄 등이 전 세계적으로 개최되었는데, 서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해 9월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린 사르트르 추모 강연회는 극우반동의 도시 한복판에서 새로 나온 극좌 지식인에 대한 구애와 애도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수만 명이 참석하여 빅토르 위고의 장례식을 연상시켰으나, 참석자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이었고, 사르트르가 항상 그의 글로써 권리를 지켜준 사람들이었다.

 

사르트르의 실존철학

실존주의문학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구토』는 사물의 직면했을 때의 불안과 실존의식을 묘사하면서 '인간존재의 부조리'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이런 불합리한 존재를 깨 달았을 때의 느낌을 '구토'라고 표현하였다.

독자들이 이 소설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작품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실존 · 자유 · 주체성 등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개념들은 그의 방대한 철학서인『존재와 무』에 제시되어 있다.

 

실존주의

실존이란 원래 '본질'에 대한 '현실 존재'라는 뜻이 다. 본질은 '무엇이냐?'를 문제 삼지만, 실존은 '가능성'을 문제 삼는다. 현실 존재는 물건의 경우에는 상대적이지만, 인간존재의 경우에 있어서는 절대적이다. 물건이나 동물인 경우에 는 서로 바꿀 수도 있고 얼마든지 대신할 수도 있지만, 인간은 남과 대신될 수가 없다. '나'라는 인간, '나'라는 개인, ‘나’라는 주체는 남과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그 자체가 독립하여 존재하는 단독자다. 키에르케고르는 절대로 바꿀 수 없는 단독자, 즉 있는 그대로의 엄연한 '본래적인 자기'를 실 존이라 불렀다. 이런 의미에서 실존철학이란 인간이 자기 초월에 의해서 불안과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철학이요, 위기상황에 직면한 인간이 본래적 자기를 되찾으려는 자기 회복의 철학이다.

 

사르트르의 실존철학

사르트르에게서 실존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요, 다른 하나는 '실존은 주체성이다'이다.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 르 등의 무신론적 실존주의가 등장한 후, 기독교의 창조론적 세계 관이 의심받자 이들의 반격은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냐"였다. 이에 대한 대답은 한마디로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존재 그 자체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의식이 있는 존재(대자적 존재, 인간)와 의식이 없는 존재 (즉자적 존재, 사물)로 나눌 수 있다. 책상의 경우 미리 정해진 설계도에 따라 목수의 의도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본질이 실존보다 앞선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는 그 행동이 순간순간 변화하게 되어, 잠시 후에 어떤 행위를 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의 경우 '실존이 본질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로부터 인간의 본질을 미리 생각하고 규정해서 만들어낸 존재, 즉 신은 없다. 왜냐하면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신의 의도를 따를 것인데, 그렇지 않고 순간순간의 행동을 자신이 창조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인간을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행동이 가능한 주체적 존재로서 파악하였다. 자유로운 선택과 결단에 의해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며 살아가는 행동적 실존으로서 인간을 파악하였다. 즉 “실존은 주체성이다"라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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